속 미국시대종언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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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6일 「닉슨」대통령이 『미국은 더 이상 완벽한 우위, 또는 탁월한 위치에 있지 않다』면서 미국시대의 종식을 선언했다고 외신은 보도했었다.
전해진 대로, 앞으로의 세계가 미·소만이 아니라, 중공·일본·서구 등 5개의 세력권으로 나누어진다는 소식은 우리에겐 퍽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의 진의는 알고 보니 일부 외신의 오보가 빚어낸 파문이었던 것 같다.
「닉슨」은 『난숙된 희랍·라마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도 도의적으로 퇴폐에 기울어가고 있다』고 경고했을 뿐이다. 그는 『위대한 세계의 지도자다운 기본적인 정신상·도덕상의 힘을 미국민이, 아직은 가지고 있다』고 미국민의 도의적 복원력에 관한 믿음을 말하려했던 것이다.
문제된 「닉슨」발언은 미국 중서부지방의 신문·방송회 사장들 앞에서 향한 것이었다. 중서부는 곡창지대. 다분히 보수적이며 아직도 전통적인 윤리감이 강한 곳이다.
따라서 「닉슨」은 미국의 정신적 건전성을 강조하여 이곳 사람들에게 「어필」하려 했던 모양이다. 그가 언급했다는 다른 나라들의 도전에 관한 얘기도 정확한 외신에 의하면 이렇다. 소련은 『대결에서부터 교섭의 상대로 바꾸어졌다.』 중공은 『창조적이며 생산적이 되어 국제적 고립에 종지부를 찍으려 하고 있다.』
일본과 서구는 『우호적이기는 하나 만만찮은 상대들이다.』 이런 나라들의 도전을 이겨내려면 미국은 환경·경제·정신력·도덕의 면에서 「건전」한 국가가 되어야한다. 「닉슨」은 그저 미국이 그만한 힘과 용기는 갖추고 있다는 낙관론을 편데 지나지 않았다. 『미국은 모든 것이 항상 움직이고 있고, 또 모든 변화가 개선을 뜻하게되는 경이의 나라이다』 이렇게 「토크빌」이 말한 것은 1백년 전의 일이었다.
이제 그 미국은 모든 곳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미국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참 지겨운 일이야. 물론 자기가 미국인이라면 별문제지만.』 「존·오스븐」이 쓴 「분노로 돌아다본다」의 한 주인공은 말하고 있다.
미국 안에서도 젊은 세대는 지금 패배주의와 마약에 좀 먹혀가고 있다. 꼭 옛 희랍과「로마」의 말기증세를 오늘의 미국이 나타내고 있다는 「닉슨」의 경고에는 조금도 과장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역사를 두고 볼 때에도 1백년동안이나 세계를 지배해온 나라는 극히 드물다. 더군다나 한나라의 세계지배를 바랄 수 없는 게 현대이기도 하다.
과연 미국이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대응」의 「사이클」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겠는지. 그것은 「닉슨」의 낙관론만으로는 이겨내기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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