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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있는 진품 찾아내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하고 발품 팔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6호 15면

1 1936년 창간돼 2007년 폐간까지 보도사진의 선구적 역할을 한 잡지 ‘LIFE’ 모음. 6·25를 다룬 50년대 잡지도 있다. 2 가죽 케이스가 멋스러운 빈티지 폴라로이드 사진기. 3 스테인드글라스 소품들. 유리창에 걸어놓으면 근사하다.4 1950~60년대 미국 가정에서 인기였던 영국제 미니 재봉틀. 15만원. 5 철 갑옷의 기사가 들고 있는 건 불을 잘 붙게 하는 부지깽이와 재를 쓸어내는 빗자루. 벽난로 옆 장식이다. 6 빨래 짜는 기계. 미국 가정집에서 실제 사용했던 빈티지. 빨랫감을 가운데에 넣고 손잡이를 돌린다. 7 미국 유명 유리병 제품 빈티지 Ball Jar 모음. 8 케이스까지 잘 보관된 빈티지 타자기. 지금도 무리 없이 작동한다.
10 시어머니와 함께 앤트빈트를 운영하는 정유진씨. 미국 현지에서 구해온 빈티지 전화기를 들고 있다.

어떤 세월은 쌓일수록 가치가 된다. 엄마가 고이 간직해온 찻잔 세트, 할아버지가 쓰던 손때 묻은 타자기가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대접받는 이유다. 서울 신정동 호젓한 골목길에 자리한 ‘앤트빈트(Antvint)’는 말 그대로 보물창고다. 미국 뉴저지 토박이 할머니가 대대로 집안 결혼식에서 써오던 ‘밀크 글래스(milk glassㆍ우윳빛 유리)’ 촛대 세트부터 멋쟁이 할아버지의 1920년대 목제 타자기까지 오래된 생활 소품이 빼곡하다. 정유진(29) 대표가 시어머니와 함께 깐깐한 안목과 확고한 기준으로 발품 팔아 모은 것들이다.

아메리칸 빈티지 전문점 ‘앤트빈트’의 정유진 대표

앤트빈트가 취급하는 빈티지의 기준은 ‘실제 사용 가능할 것’과 ‘남에게 선물하기에 손색없을 것’. 케이스부터 사용설명서까지 잘 보관된 제품이 많다.

9 빈티지 목제 와인 오프너. 80㎝ 높이의 보기 드문 스탠딩 제품으로 소장가치가 있다.

고부는 미국에서 살며 함께 빈티지 제품을 모으다 주변의 권유로 아예 가업으로 삼기로 의기투합했다. 처음엔 블로그(http://blog.naver.com/antvint)로 시작했다가 마침 서울로 돌아온 정 대표가 작은 공간을 차렸다. ‘앤트빈트’는 ‘앤티크(antique)’와 ‘빈티지(vintage)’ 앞 글자에서 따온 이름.

빈티지 중에서도 ‘아메리칸 빈티지’, 그중에서도 세계 제1, 2차 대전 이후인 1920~30년대와 1950~60년대 제품에 집중한다. 전후 풍요로움을 추구한 시대상이 살림살이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를 사용해 질도 좋고 독특한 디자인도 많다. 정 대표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80㎝ 높이의 ‘스탠딩 와인 오프너’. 목제로 된 긴 삼발이 중앙에 와인을 고정하는 장치가 있는 제품으로, 연회장에서 특별한 와인을 선보일 때 쓰인 희귀품이다.

1920년대식 목제 탈수기에 전쟁에서 실제 쓰였던 군용트렁크, 진공관 라디오도 소장가치가 높다. ‘아메리칸 홈 저널’ 같은 미국 옛 잡지에 일러스트와 함께 실린 ‘전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위한 저녁 요리 스페셜’ 특집에선 당시 시대상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렇듯 스토리가 있는 진짜 빈티지를 찾아내는 비밀은 다름 아닌 발품. 오랜 취미로 터득한 에스테이트 세일즈(estate salesㆍ집주인 유고 시 또는 이사 시 물건을 내놓는 것) 관련 정보를 입수해 미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직접 찾아다닌다. 방문 전 해당 집의 건축 연대나 당시 인테리어 경향 예습은 필수다. 집주인들은 물건 사러 온 이들과 얘기가 통한다 싶으면 더 좋은 물건을 착한 가격에 내놓기 때문이다.

정 대표와 시어머니가 최근 입수한 잡지 ‘라이프(LIFE)’ 200여 권에도 스토리가 있다. “80대에 은퇴한 변호사의 집을 방문했는데, 자기가 한국전 참전용사라며 옛 얘기를 한참 했어요. 원래 팔지 않으려고 했는데 내놓는다며 소중히 여겨달라고 했지요.”

빈티지 물건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헤치는 정 대표의 오늘도 어느새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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