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 잘해 받은 직원 돈 걷어 일 안 하는 직원에게도 ‘분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6호 06면

26일 서울 동자동 서울역 광장에서 전국철도노조가 ‘KTX 민영화 반대 3차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전국철도노조 소속 한국철도공사 조합원 1만여 명은 “불합리한 경영평가와 그에 따른 성과급 배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매년 성과급 균등 분배 투쟁도 벌이고 있다. [뉴시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임직원들에게 성과급 709억원을 지급했다. 1인당 평균 1676만원(기관장 제외)꼴이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성과급은 직원들을 5개 등급 이상으로 나눠 평가해 최고·최저 등급 간 차이가 두 배 이상 나도록 지급해야 한다. 평가와 보상을 연계해 생산성을 향상시키자는 취지에서다. 그런데 도로공사는 실제 성과급을 지급할 때 3급 이하 직원 간 격차가 1.4배만 나도록 했다. 지난해 12월엔 또다시 기준을 고쳐 6급 이하 직원 간 격차를 1.18배만 나게 했다. 이에 감사원은 지난달 “성과급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며 ‘주의’를 줬다. 하지만 도로공사 노조 측은 “성과급 격차를 다시 키울 생각이 없다”고 했다. 노조 간부 K씨는 “정부 지침대로 하면 누구는 1500만원을 받고, 누구는 거의 못 받는다. 그러면 위화감이 생겨 조직이 돌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무력화하는 직원 성과급 실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임직원은 지난해 1인당 평균 750만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곳 역시 노조 측 요구로 직원 간 성과급 격차를 줄였다. 노조는 더 나아가 노조원들이 받은 성과급을 거둔 뒤 똑같이 나눠줬다. 전국철도노조 소속으로 익명을 요구한 한 노조원은 “매년 노조 조합원의 3분의 2 이상인 1만5000명에서 1만7000여 명이 성과급 균등 분배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며 “직급이나 호봉마다 다르긴 한데 평균적으로 수십만원 선에서 조율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직원들이 정부 지침을 어기고 성과급 격차를 줄이거나 성과급을 균등 분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SUNDAY가 감사원의 감사결과 보고서(‘공기업 주요 사업 및 경영관리실태’)를 바탕으로 각 기관에 확인한 결과다.

감사원에 따르면 부채 규모가 큰 15개 공기업 중 4곳(한국토지주택공사·한국가스공사·한국도로공사·한국철도공사)이 2011, 2012년에 성과급 차등지급률을 임의로 조율했다. 토지주택공사는 최고·최저 등급 간 격차가 1.06~1.27배 수준에 그치도록 만들었다. 가스공사는 3급 이하 직원의 차등 폭이 1.25배에 불과했다.

또 본지 확인 결과 코레일과 가스공사, 한전의 자회사인 한국남부발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노조는 ‘성과급 균등 분배’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균등 분배가 “업무평가를 무력화하고 직원 간 경쟁을 막는다”는 비판을 살 것을 우려해 비공개로 실시해 왔다.

민노총 공공운수연맹 산하만 10여 곳
성과급 균등 분배는 수년 전부터 공공기관 사이에 은밀히 퍼지고 있다. 가스공사 노조는 지난해 처음 시작해 올해까지 두 차례 실시했고, 남부발전 노조는 올 9월 처음으로 성과급을 균등 분배했다. 가스공사 노조 간부 P씨는 “재작년부터 준비해 조합원 2500명이 참여했다”며 “처음엔 S등급을 받은 조합원들이 돈을 반납해야 돼 불만이 많았는데 올해에는 C를 받아 성과급을 돌려받게 됐다며 좋아하는 이도 많다”고 전했다. 남부발전에서 일하는 직원 250여 명도 균등 분배로 S등급과 D등급 사이에 생겼던 100여만원의 성과급 격차를 없앴다. 발전노조의 이병철 총무실장은 “조합원 동의를 얻는 데 시간이 걸려 발전노조 산하 5곳(한국동서·서부·중부·남동·남부발전) 중 1곳만 실시했지만 앞으로 다른 곳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부터 성과급 균등 분배를 장려해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공공운수연맹의 박준영 공공기관팀장은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하는지 밝힐 수 없지만 산하 기관 10여 곳이 하고 있다”며 “공기업의 낮은 직급이면 매년 평균 20여만원, 준정부기관은 10여만원씩 내거나 돌려받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만큼 정부도 개인의 재산권을 건드릴 순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성과급 지급 기준이 되는 경영평가에 문제가 많다는 입장이다. “하급 직원 중엔 운전하는 분도 많고 직무 구분이 안 되는데 억지로 업무평가를 하라고 한다”(도로공사 직원), “사고가 나면 평가 점수가 깎이는데 차량이 많은 사업소에선 사고가 많이 날 수밖에 없는데도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한다”(코레일 직원), “능력과 무관하게 윗사람과 친하면 평가도 잘 받는 게 사실”(가스공사 직원)이라는 것이다. 2009년 철도노조가 작성한 ‘성과급 균등 분배 투쟁 계획’에 따르면 이들은 균등 분배를 “정부의 통제방식 중 하나인 경영평가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 명시하고 있다. “경영평가는 인력 축소나 전환 배치를 촉발시키는 구조조정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노동자를 분열·통제하기 위한 수단을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 똑같은데 누가 열심히 일하겠나”
성과급을 똑같이 나누는 데 대해 방만한 근태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초 한 공공기관의 내부 게시판에는 “가만 있어도 돈이 오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겠나. 조금은 차이가 있어야지…”란 글이 올라왔다. 이외에도 “성과급 균등 분배에 참여하지 않으면 ‘나쁜 놈’ ‘신뢰성이 바닥이다’라고들 한다” “지금까지 3~4년에 걸쳐 60여만원 내고, 조합에서 16만원 한 번 받았는데 비리를 저지른 사람한테까지 성과급을 보태주는 건 잘못된 것 같다”는 글이 떴다.

또 공공기관의 매출액 대비 부채비율(지난해 기준)이 각각 365%(도로공사), 751%(토지주택공사)에 달하고, 부채 증가율(올 6월 결산)이 22.9%(코레일)에 이르는데도 직원들의 책임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 노조의 성과급 균등 분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 보는 이가 많다. 노조는 ‘정당한 활동’이라 주장하고, 정부는 실태 파악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실이 공공기관의 성과급 균등 분배 현황을 묻자 기획재정부는 “파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균등 지급하는 곳이 있다는 건 모르고 있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 의원은 “가뜩이나 연봉도 많이 받는 기관들이 정부 지침까지 어겨가며 보너스 나눠주듯 성과급을 퍼주고 있는데도 감독 책임이 있는 기재부가 관리를 태만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공기관 구성원들이 경영평가 결과를 수용하지 않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사회공공연구소 김철 연구위원은 “대다수 직원은 성과급이 자기가 일하는 것에 따라 정해지는 게 아니라 사측과 가까운 사람에게 간다고 생각한다”며 “결국 평가의 신뢰성이 확보돼야 조직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