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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대신 전기로 위암수술 … 세계 표준 만들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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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호 18면

캐리커처=미디어카툰 정태권

1995년 연세대 의대 노성훈 교수는 대한외과학회 학술대회에서 자신의 위암 수술 장면을 비디오로 발표했다. 의사들은 한편으론 놀라는 눈치, 한편으론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노 교수는 메스를 전혀 쓰지 않고 전기소작기로 암 부위를 자르고 지진 다음 자동연결기로 마무리했다. 수술 시간은 기존 4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었다

베스트 닥터 ④ 연세대 세브란스 암병원장 노성훈 교수

노 교수는 이듬해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국제외과종양학회에서, 다음 해에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위암학회에서 새 수술법에 대해 발표했다. 외국 의사들의 반응은 좀 더 적극적이었다. 도쿄의치과대 고지마 교수, 기후대 요시다 교수, 시즈오카 암센터 데라시마 박사 등 일본의 대가들이 앞다퉈 제자들을 보냈다. 매년 일본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인도 등 세계 각국에서 100여 명의 의사가 ‘노성훈 문중’에 몰려들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국내외에서 ‘전기소작기 수술법’이 번지더니, 지금은 지구촌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노 교수는 한 해 600명꼴로 지금까지 9000명 가까이 수술하며 세계 최다 기록을 세웠다.

“당시 일부 원로교수는 위암 수술은 오랜 기간 검증을 거쳐 정착됐기 때문에 20년 전, 10년 전이나 똑같고 지금도 똑같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입니까? 의사의 관점에서는 당연하게 보이던 것도 환자나 보호자의 눈으로 보면 비정상적일 수 있습니다.”

노 교수는 환자들에게 무엇이 불편한지를 묻고 또 물어 치료법을 개선했다. 1990년대에는 위암 환자가 수술을 받으면 수술 부위의 분비액과 가스가 빠져나가도록 코를 통해 수술 부위까지 연결되는 콧줄을 달아야 했다. 하지만 노 교수는 수술 때 주사로 가스를 빼내어 콧줄을 달지 않도록 했다. 그는 또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겼을 때 고름을 배출하려고 환자에 배에 넣는 심지도 쓰지 않는다. 노 교수는 수술 부위를 25㎝에서 15㎝로 줄여 배꼽 아래에 수술자국이 없다. 척추에 꼽은 튜브를 통해 환자가 마취제를 자동으로 넣을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 환자가 통증을 덜 느끼도록 했다.

한때 재발을 막기 위해 위암 수술 시 비장(지라)을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노 교수는 면역 기능과 관련 있는 비장을 잘라내지 않고 주위의 림프절을 완전히 제거하는 수술법을 개발했다. 최근에는 절개되고 남은 위와 십이지장의 연결부위를 최소화해 후유증을 줄이는 수술법을 개발했다.

노 교수는 연세의료원 암센터 원장에다 세계위암학회 회장으로 있다. 선친은 장항제련소 소장을 지냈고 국내 금속산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노병식 박사다. 장인은 첫 의학백과사전을 만든 고(故) 이우주 전 연세대 총장이고 손위처남은 간질 치료의 대가인 연세대 신경과 이병인 교수, 손아래처남은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인 이병석 강남세브란스병원장이다.

노 교수는 “위암은 적절하게만 치료받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병”이라고 강조한다. 5년 생존율이 10년 전 67%에서 지금은 75%로 높아졌으며 병기별로는 1기 95%, 2기 80%, 3기 60%, 4기 15%로 향상됐다. 내시경, 복강경 등을 이용해 후유증과 부작용을 줄인 새 치료법도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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