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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72가지 언어 구사했던 추기경 머리 속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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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언어의 천재들
마이클 에라드 지음
박중서 옮김, 민음사
501쪽, 2만원

원서의 부제는 ‘세계에서 가장 비범한 언어 학습자들에 대한 탐구’다. ‘초다언어구사자(hyperpolyglot)’ 들에 대한 역사·과학·인문학적 분석을 시도한 책이다. 유창한 발음을 위해 혀에 칼을 대는 수술이 행해질 정도로 영어에 목을 매는 나라니 일단 솔깃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외국어를 쉽게 마스터할 비법은 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은 없다. 제목이나 표지가 주는 딱딱함과는 달리 책 자체는 꽤 생생하고 흥미롭다.

 중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지은이는 ‘초다언어구사자’에 주목했다. 1990년대 중반 런던 유니버시티칼리지의 언어학자 딕 허드슨이 제시한 개념으로, 여섯 가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이다. 지은이는 자료조사와 실험, 인터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초다언어구사자’의 전설과 비결을 추적 조사했다.

 87년 벨기에 플랑드르에서 다언어구사자 경연대회가 열렸다. 우승자 요한 판데빌라는 31개 언어를 알았고, 22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누구나 한가한 시간에 외국어를 한 가지 공부하는 것이 마치 스포츠를 즐기는 것처럼 일반적인 분위기”였던 플랑드르에서도 이례적인 인물이었다.

 그런가 하면 기네스북에 현존하는 최고의 어학 능력자로 올라있는 그레그 콕스는 64가지 언어를 말할 수 있고, 그 중 14가지는 유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출신인 그는 10대 시절부터 언어에 매료됐으며 국방부어학원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이밖에 50가지 언어를 재빠르게 익히고 구사했던 대장장이 일라이후 버리트, 수십 가지 언어를 비슷한 수준으로 알고 복습 없이 활용할 수 있었던 서번트증후군 환자 크리스토퍼 등 다양한 언어능력자가 소개된다.

 뇌과학 연구까지 동원한 지은이의 연구는 보통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초다언어구사자들이 언어습득에 유리한 신경학적 자원을 소유한 ‘신경종족(neural tribe)’이기는 하지만 쉽게 외국어를 배운 것은 아니며, 익히고 난 뒤에도 언제든 쓸 수 있도록 ‘활성화’하기 위해선 꾸준히 공부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서다.

 무엇보다 힘을 주는 위로는 72가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는 이탈리아 출신의 19세기 언어천재 주세페 메조판티 추기경을 두고 로마의 한 사제가 “생각이라곤 겨우 다섯 가지도 없었다”고 평했다는 이야기다. 외국어를 더 잘 하고 싶다면 ‘원어민처럼’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벗어나야 한다는 등의 ‘언어학습법’처럼 도움이 될 조언도 있긴 하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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