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방부, 성희롱 피해 여군 자살할 때까지 뭐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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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 군이 여군들에 대한 성차별과 성폭력으로 얼룩지고 있다. 최근 전방부대의 한 여군 대위가 직속상관의 성희롱을 못 이겨 자살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숨졌다. 얼마 전에는 전방부대에 근무하는 임신한 여장교가 과로로 쓰러져 숨진 일도 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선배 생도가 후배 생도를 성폭행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방부가 밝힌 ‘군내 성범죄 현황’에 따르면 2009년 329건에서 지난해 453건으로 성범죄 발생이 갈수록 늘고 있다. 여군 비율을 크게 늘리겠다는 국방부가 여군의 인권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방부는 현재 전체 군 인력의 1% 남짓인 여군을 2020년까지 장교의 7%, 부사관의 5%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라고 한다. 청년 인구의 급감에 따른 병력 충원의 어려움을 보완하고 미래 전장(戰場)에서 여성만의 특성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한 정책이다. 그러나 그런 정책이 잘 시행되도록 하기 위한 준비작업은 크게 부족하다.

 남성 중심인 동시에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가 뿌리 깊은 군대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성희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추정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따라서 군 당국은 그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군 당국의 대처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파문이 확산하는 것을 막는 데만 급급해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군 정책 담당자들조차 여군에 대한 인권 침해 위험성이 심각하다는 걸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1차적으로 장교나 부사관 등 간부들 전원에 대해 여군의 인권을 존중하는 의식이 몸에 밸 수 있도록 강도 높은 교육을 해야 한다. 동시에 피해를 당한 여군이 손쉽게 구제를 호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10개월 동안 성희롱을 당하는데도 호소할 데가 없어 자살에 이르기까지 방치한 군 당국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