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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스물 한 돌「세계의 벽」을 말한다|체험세대와 동란동이의 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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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25를 몸소 치른 세대와 6·25가 터지던 해 세상에 태어난 세대가 무릎을 맞대고 앉았다.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채 적 치하 90일의 고난을 겪은 대학교수와 직접 적과 맞부딪쳐 혈전을 벌였던 역전의 장군-. 그리고 6·25를 어버이의 구술이나 책으로만 더듬어 볼 수밖에 없는 사변동이들의 대화는 세대간의 격차, 안보관의 차이, 그리고 가치관의 변천 등을 엿보이게 했다. 『반공은 실천해야 한다』 『젊은 세대는 소외되고있다』 『반공은 목적이지 수단일 수 없다』는 대화가 이어질 때마다 6·25 세대와 새 세대의 이해와 설득과 대화로만이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줬다.
▲사회=6·25가 터진지 21주년을 맞았습니다. 「닉슨·독트린」이 몰고 온 해빙「무드」와 중공의 「핑퐁」외교 등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맞는 이번 6·25는 국내적으로도 두 차례의 총선거와 교련을 둘러싼 세찬 「캠퍼스」파동 등 회오리가 채 가시기 전에 맞게 되었습니다. 오늘 좌담은 6·25를 몸소 겪은 세대와 6·25때 탄생한 사변동이를 한자리에 모시고 21년을 사이에 둔 세태관·시국관·가치관의 차이와 변천을 터놓고 얘기하자는 뜻에서 마련했습니다. 먼저 김 장군께서 6·25를 어떻게 맞이하셨는지요.
▲김 장군=나는 당시 국군 23연대장으로 새벽의 기습소식을 듣고 황급히 사단장에게 연락, 부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했었습니다. 그때부터 줄곧 야전에서 잠시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적 치하 90일은 생지옥>
▲이 교수=나는 피란 봇짐도 싸지 못한 채 적 치하 90일을 겪었습니다. 나의 6·25는 「고난의 90일」이란 책자로 출판되어 영문으로 번역까지 되어 인기를 모은 적도 있지요. 이 책을 읽으면 6·25를 겪지 않은 세대들도 무엇이 6·25인지 금새 알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당시 고대교수였는데 미아리 쪽에서 기관총소리가 가까워 오는데도 당시 현상윤 총장은 『절대로 안심하라. 대한민국은 안 망한다』고 말했지요. 나는 그분이 어딘가 통하는 점이 있으니 알고 한 소리겠지(웃음) 라고 믿었기 때문에 피난도 못하고 생지옥을 맞게 됐지요.
▲김 장군=그때 사회는 구석구석에 공산당이 도사리고 있었어요. 군부에도 공산분자가 많았는데 나는 임관 후 줄곧 정보관계를 도맡아 잘 알지요. 그런 중에도 군인들은 용감했습니다. 나는 황지 태백 중·고등학교 학생 3백 70명을 이끌고 피난길에 올랐는데 학생들이 총을 달라지 않아요. 이내 1개 대대를 편성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이 교수=6·25는 한마디로 국민들이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고 있다가 당한 것입니다. 국방을 강화하지 않으면 하루도 살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지금 세대는 잘 이해 못할 지 모르지만….
▲사회=6·25를 책으로 배운 사변동이들이 갖고있는 6·25상은 무엇인지.

<당시 국제정세 알고 파>
▲이 군=책을 통해 읽은 것이 전부입니다. 그 당시 국제정세가 어떠했길래 전쟁이 터졌는지 그것이 알고 싶은 일입니다.
▲안 양=중앙일보에 실리고있는 「민족의 증언」을 통해 참혹 상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그 날을 겨레들이 겪었음을 느꼈습니다.
▲김장군=나는 아내가 임신 중에 전쟁이 나서 50년 8월 16일에 아들을 낳아 사변동이를 갖고있죠.(웃음) 장교가족이라고 피난 못간 모자를 다 죽인다하여 아내는 용산에서 배를 타고 7일만에 피난했지요. 얼마 전 아들에게 『너, 빨갱이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으니 『모른다』기에 청룡부대에 넣어 월남에 보냈더니 갔다와서는 알겠다고 하더군요.(웃음) ▲이 교수=나도 막내딸을 50년에 낳았으니 사변동이를 가진 셈입니다. 6·25를 알려면 내가 쓴 책을 읽으라고 하지요. 이젠 10년 이상 아버지 책을 숙독, 줄줄 외는 정도랍니다.(웃음) 자유주의자들은 6·25때 승공의식도 반공의식도 거의 없었습니다. 우선 믿을만한 힘이 없었으니까요. 국군의 사기나 장비가 보잘것없으니 말로만 반공을 해봤자 일단 터지니까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더군요.

<압록강까지 밀었어야>
▲장군=6·25라면 실감이 안 납니다. 할아버지에게서 들을 때마다 임진왜란 얘기 듣는 거나 마찬가지지요.(웃음) 휴전협정을 맺지 말고 압록강까지 확 밀고 가지 못한 대목이 안타까와요.(웃음) ▲사회=6·25를 치른 세대와 오늘의 젊은 세대와 가치관의 차이는- <후방의 정신자세 한심>
▲이 교수=6·25 전후해서 애국을 부르짖는 사람은 많았으나, 정치가 중에 「리더쉽」이 없었습니다. 당시엔 부산까지 피난 가는 것, 또 밀리면 제주도, 그 다음엔 일본으로 도망가는 것을 궁리하는 것이 고작이었던 세태였죠.
▲김 장군=포항전선에서 한창 싸울 때인데 후방 갔다오면 한심한 생각이 들었지요. 웬만한 사람이면 부산에 배 띄워 놓고 여차하면 될 생각들만 하고있었으니까요.
▲이 교수=미국 친구들이 왜 일본으로 도망하지 않느냐고 물어요. 『너희 국군 속에 싸울 생각이 없는 군인이 많은데 넌 무엇을 믿고 남아 있느냐』는 겁니다.
▲사회=가령 요즘 교련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6·25를 겪은 세대들은 위기의식을 느껴 교련에 찬성하는 사람이 많고 새 세대는 반대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겪은 세대」와 「안 겪은 세대」간에 안보관의 차이 같은 것이 있는지요.
▲이 군=6·25는 민족사의 반역입니다. 무력과 폭력으로 인간성을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우방에서 우리를 도왔던 겁니다. 그러나 안일은 금물입니다. 해빙「무드」가 일고있어 전면전쟁은 좀처럼 없겠으나 우발적인 전쟁가능성이 상존 하므로 적극적인 외교로써 자유대한의 「이미지」부각에 힘써야겠습니다.

<반공은 자발적이라야>
▲이 교수=현대는 「인포메이션」시대입니다. 소련은 이미 시민사회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중공도 미국과 무역을 모색하고 있는 판국에 북괴가 아무리 문을 닫고 있더라도 정보는 새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북한지역에서 들을 수가 없는데 왜 존립하느냐는 얘기가 나왔을 때 『북괴 정보기관은 듣고 있을게 아니냐.』 입이 있는 한 정보는 퍼지기 마련이니까 그것만으로 족하다는 것이죠. 시간이 가면 북괴도 어느 구석인가 녹지 않고 못 배길 것입니다.
▲김 장군=학생들이 교련 반대「데모」를 벌일 때 가장 안타까운 것은 『비밀, 비밀』 할게 아니라 공개할 것은 공개하자는 겁니다. 북괴의 전쟁준비 상을 좀더 공개하여 학생들을 설득하자는 뜻에서 말입니다.
▲장 군=나는「데모」에 한 번도 빠져보지 않은 학생입니다.(폭소) 6·25를 겪지 않은 사람으로 실감은 나지 않지만 반공은 자발적으로 우러나야지 강요하면 의미가 없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교수=각 계 각 분야별 전문가들에게라도 북괴소식을 알려주어 이해 속에 참다운 반공이 싹트리라 봅니다.
▲김 장군=북괴 영화를 보면 겉으로는 굉장한 것 같기 때문에 아직 일반 대중에겐 곤란할 것 같아요. 아는 사람이 볼 때는 겉은 화려하지만 피부색을 보면 못 먹어서 부옇게 뜬 얼굴색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 교수=군중들이 만세를 부르는데 팔목에 손목시계 찬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더랍니다.(웃음) <반공 탈 쓴 이익 배제를>
▲장군=반공은 우리 모두의 목표입니다. 이것이 수단으로 쓰여지는 경우가 있어 「트러블」이 일어나지요. 언론도 보도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있는 느낌입니다.
▲안 양=북괴가 내정 실패를 외세위협으로 호도 하면서 도발을 할 가능성이 많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여성들도 전쟁에 대비할 준비를 해야 됩니다. 「이스라엘」여성의 애국심을 본 받고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간호교육은 비상시에도 좋고 가정생활에도 좋으므로 이것을 모두 습득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
▲이 교수=개인이나 집단이 반공을 구실 삼아 이익을 보는 일이 있다면 안될 것입니다. 이렇게되면 진정한 반공은 없어집니다. 순수한 반공이 진짜 반공이지요.
▲안 양=선거 때 참관인으로 시골에 내려가 봤는데 위기의식을 너무 강조하니까 반발의식이 생기는 것 같더군요.
▲이 군=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반공 교육을 받고 자라왔습니다. 현재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것도 국군과 예비군 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학은 대학의 존엄성이 있으므로 현역장교가 「캠퍼스」에 들어오는 것은 곤란한 것 같아요. 교련자체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나 학원의 순수성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군사교육은 반대하는 거지요.
▲이 교수=학원에서 현역 군인이 교련을 시킨다면 「아카데미즘」의 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있으니 교련은 계속하되 예비역으로 교관을 대치하는 것이 어떨까요.
▲김 장군=예비역은 학생들의 지식수준에 따르지 못하고 호흡이 맞지 않는 게 탈입니다. 그래서 정규사관출신으로 하다보니까 현역이 불가피하게 됐지요.
▲사회=6·25 세대는 학생뿐만 아니라 군에 들어가 복무중인 사람도 많으리라 믿는데 이들에게 주고 싶은 말씀은-. 또 젊은 세대가 기성에게 하고싶은 말은-.
▲김 장군=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침투하고 있습니다. 경계를 잘 해야 합니다.
▲이 교수=젊은 세대들, 특히 대학생들이 사회에서 약간 소외당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소외감에서 시위가 나오는 겁니다. 사회참여 의견을 터 주어야 될 것입니다.
▲장 군=사회풍조의 순화, 부정부패 일소 등 정신적 자세를 바로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기성들은 젊은 세대의 심정을 이해하려고, 또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도 않는 것 같아요. 지난 번 학원파동 때 냉각기를 두고 교수들과의 대화를 기다렸으나 한 명의 교수도 찾아주지 않았어요.
▲이 군=「데모」·처벌·휴업령과 같은 악 순환 속에서 우리는 참다운 대화의 광장을 잃고 있습니다. 막혀있는 대화의 길을 트는 것만이 세대간의 벽을 뚫는 길이라고 봅니다.
▲사회=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참석자>
▲이건호 교수(55·이대·당시 고대법대 교수)
▲김종순 장군(52·국방장관 특별보좌관·당시 23연대장) ▲이석한 군(21·서울대 상대2년)
▲장병식 군(21·고대농대 2년)
▲안창금 양(21·이대 법정대 3년)
본사 사회부 정덕오 차장(사회) 최규장 기자 김영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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