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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감각|문상희<연세대교수·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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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차 대전은 원자탄의 비극으로 끝났다. 전후 열강은 서로 앞을 다투어 원자력개발에 혈안이 되었다. 시험폭발에 관한 기사가 「뉴스」를 메웠다. 무장평화의 미명아래 「카인」의 후예들은 대량학살준비에 머리와 정력,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는 분명히 인류 가족의 자살행위이다. 인류는 지금 어디로 가고있는 것일까.
시험 폭발로 인하여서도 많은 피해가 어족이나 어부들에게 있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어느 절해 고도의 거북이 떼들이 원자탄 세례를 받고 방향감각을 상실했다는 보도이다. 이 거북이들은 본능적인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허둥지둥 이리 저리로 방황하였다는 것이다. 벌레들에게도 비상한 방향감각이 있고, 비둘기에게도 수 천리 밖에서 제집을 찾아 돌아갈 수 있는 방향감각이 본능적으로 갖추어져 있다. 방향감각의 본능은 그 생존을 가능케 하는 동력이다. 그러므로 방향감각의 상실은 그들의 생존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테네시·윌리엄즈」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여주인공 「브란케」는『우리는 욕망과 죽음 사이에서 살고있다』고 넋두리 같은 고백을 하면서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고 방황하다가 드디어 정신병원으로 가고 만다. 「아더·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도 주인공 「로만」은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모르고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몸부림치다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종국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는 현대의 대표적인 미국의 두 비극작가의 비극적 현대인의 진단이다.
오늘 우리는 다른 후진국가들처럼 낙후성을 면하려고 근대화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일찍이 보지 못했던 급격한 사회변화과정에 있다. 그래서 이 같은 혁명적인 격동 속에서 원자피해를 본 거북이들처럼 방향감각을 싫어가고 있다. 더구나 오늘 우리의 문화공간은 너무나도 혼탁하다. 국적 모를 사이비 문화와 저속문화가 범람하여 문화공해에 정신력이 마비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문화의 방향, 역사의 방향, 민족의 방향 설정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시급한 시점에 우리는 서있다. 방향감각의 상실은 결국 자아상실에서 오는 것이다. 자아를 상실하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가기는 가도 목적지로 못 간다. 모든 것은 헛수고이다. 「얼」찾기 운동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모든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일은 자각에서 출발한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사람이 인도하는 가정과 사회, 사회와 학교, 군대와 정부, 민족과 국가의 운명은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비극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방황과 퇴보밖에 없다.
우리는 원자피해를 받은 거북이들처럼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역사는 전진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방향을 향하여 전진하고 또 전진하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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