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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로 위장된 월맹「파테트·라오」불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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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5월24일「하노이」시 중심 가를 수십 대의 고급승용차가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여간해서 이런 장관(?)을 보지 못하는「하노이」시민들은 연도에 죽 늘어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중의 누구 하나도 이것이 무슨 행렬인지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동차의 대수로 보면 연 전 주은래가 왔을 때와 필요할 만한 것이지만「팜·반·동」수상과 나란히 앉아있는 사람은 중공이나 소련 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마다『누구냐』고 묻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더·j·도먼 기>
수수께끼의 인물-. 그는 바로「라오스」좌파의 지도자「수파누봉」공이었다.
그날 아침「하노이」방송이 그의 도착「뉴스」를 알렸음에도 불구하고「하노이」시민들은 그 장엄한 행렬이「수마누봉」공 일행인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너무나 파격적으로 융숭한 환대를 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 파격적인 환대에는 그럴만한 곡절이 숨어있다. 공식성명에 쓰여있는『사회주의 형제 국의 우의』이니『반 식민연합전선의 결성』이니 하는 것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곡절」이 숨어져 있는 것이다.
이번 방문이『심장치 않다』는 낌새를 보인 것은「수파누봉」공이 거느린 수행원들의 면모에서 나타났다. 그는「파테트·라오」의 정치국원들 거의 전부를 끌고 가면서도 친 월맹 파로 알려진 3명만을 쑥 빼버린 것이다.
「케이손·폼비한」·「누하크·품사반」·「푸미·봉비치트」가 바로 이들인데「수파누봉」은『월맹과의 친선을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월맹으로부터 가장 신임 받고 있는 사람을 빼돌렸다는 얘기가 된다.
한데「파테트·라오」측의 이처럼 비뚤어진 듯한 태도에 대해 월맹 측은 그냥 모르는 체 덮어둘 뿐만 아니라 한술 더 뗘서『주은래 방문 때 보다 더 요란하게』환영을 한 것이다. 「파테트·라오」가「수바나·푸마」의 정부군과 그럭저럭 겨룰 수 있었던 것이 거의 월맹 의 지원덕분인 점을 감안하면 이것은 칼자루가 거꾸로 가 있어도 이만저만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수파누봉」이 이번에 이처럼 거들 먹 거릴 수 있었던 것은『월맹 없으면 담 박 고꾸라지는 역학관계』가 역으로 작용한 때문으로 관측되고 있다. 흡사 궤변학자들의, 말놀이 같은 논리지만 그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월맹이「라오스」공산군을 도와주는 것은『형제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제 살길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 즉「베트콩」의 생명선인 호지명「루트」가「라오스」로 통과하고 있으므로「파테트·라오」의 봉기야말로『굴러 들어온 떡』이라는 설명이다. 사실「파네트·라오」가 내전을 일으키지 않았던들 월맹군의「라오스」침투는 바로「침략행위」가 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라오스」공산군의 지원을 표방하면서 호지명「루트」보호에 나선 월맹군들이 얼마 전부터 약간의 말썽을 일으켜 왔다.『도와준다』는 우월감이「파테트·라오」군에 쓸데없는 간섭을 자행하게 하고「파테트·라오」측은 그들대로 이러한 월맹군의 처사를『아니꼽게』여겨 왔다는 것이다.
월맹군과「파테트·라오」사이의 불화는 지난 연초「볼로방」고원에서 가장 격렬하게 폭발했다.「파테트·라오」군의 남부「라오스」사령관인「포마·두앙말라」장군이『항명죄』로 월맹군에 처형되자「파테트」측 군사들이 들고일어난 것.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두앙말라」장군의『항명』은「수파누봉」에 대한 것이 아니라 월맹군에 대한 것이었으므로『「파테트·라오」군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영웅적으로 죽었다는 얘기다.
이 바람에 약 1백 명의「파테트·라오」군이 정부군 쪽으로 투항해 버렸다. 「이념」보다「핏줄」을 택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수파누봉」이 친「하노이」파를 빼놓은 채 월맹을 방문하고, 월맹은 언짢으면서도 대대적인 환영을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던 것이다.「하노이」측이 이처럼 저자세 일변도로 나가는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소위「민족해방전선의 대 후방」을 자처하던 중공이 최근 들어 좀 어정쩡한 태도들 취한 것. 지난 3월「하노이」를 방문한 주은래가『월남의 무력 적화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다는「설」이 그것이다.
월맹 측이 약한 입장에 서게된 데에는 이밖에도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지난2월 미군의 공중 지원 하에 월남 군이 대거「라오스」국경을 넘자「수파누봉」은 호「루ㅌ」의 안전을 제쳐놓고「공 폭 중지」만 호소했던 것.「하노이」측으로 볼 때는 여간 괘씸하지 않았겠지만『내 코가 석자』라고 우기는「수파누봉」을 정면으로 비난하지는 못했다. 따라서「닉슨」이 재 월경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마당에「수파누봉」의 비위를 조금이라도 건드려 놓는 것은 백해무익 이라고 판단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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