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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온 환율의 점진조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내한중인 IMF(국제통화기금) 협의단과 연례적인 협의를 벌이고 있는 정부 당국은 당면한 환율 현실화 문제에 관해 최근의 물가 상승세를 감안, 점진적으로 환율을 상향 조작하는 방향으로 대체적인 양해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는 없으나 이 같은 양해가 앞으로 IMF 협의 단의 본부에 대한 보고로써 반영케 되는 것이라면, 이 문제의 기본적 과제인 환율 현실화의 요구는 이번 협의를 통해 다시 한번 부각되기는 했으나 이번에도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꺼리고 있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IMF 측이 마지못해 이해함으로써 문제를 다시 숙제로 남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러한 평가의 근거로서는 첫째 오래 전부터 환율의 현실화와 또 나아가서는 고정화를 종용해오던 IMF 측의 태도가 이번 협의에서도 더욱 경화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완화되거나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증거는 전혀 제시된 일이 없는 반면 누가 보아도 명목상의 변동 환율제에 지나지 않는 현행 환율 제도의 운영에 대한 집요한 비판이 이번 협의의 전과정을 통해서 강력히 시사됐다는 점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우리 정부와 IMF 측과의 대체적인 양해가 의미하는 것은 쌍방이 환율의 현실화 과제를 원칙적으로 재확인하면서, 환율의 급격한 인상은 회피하되, 앞으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한국의 공정 환율을 물가 상승률에 맞먹는 수준으로 올리는 실질적 변동 환율제의 운영이 불가피함을 서로 인정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IMF 측의 권고가 어떻든 간에 근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환율 문제는 급「템포」의 물가 상승세 및 수입의 증가 추세와 수출조건의 악화 등 안팎으로 협공을 받아 그 해결에 대한 압력이 무섭게 가중됐다고 할 수 있으며, 때문에 정부가 올해 들면서 환율을 도매 물가 상승률과 비슷한 3·34% (15일 현재)까지 올리고 있는 것을 IMF 측에 대한 대접만으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작금 환율 문제를 둘러싼 경제계의 원칙론 적인 시비는 과거 10여 년간 줄 곧 되풀이돼 나온 순환 논쟁이긴 하지만, 실세와 동떨어진 환율을 점차적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국제 수지의 장기적 전망이나, 대외 경쟁력의 강화를 통한 국민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해 바람직 하다는 데는 아무런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다만 차관의 원리금 상환이 무거워진다는 점에서 업자 측이 저 환율의 지속을 바라는 경향이 없지도 않으나 그 같은 저항이 차차 무력해지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문제의 핵심은 추상적으로 환율의 현실화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현실화에 접근하는 과정, 다시 말해서 구체적인 정책수단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고 할 것이며, 또 그 같은 정책 수단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전개시키느냐에 있다고 할 것이다.
환율을 올리게 됨으로써 면치 못할「마이너스」요인을 누르면서 그 플러스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외환 정책과 연관된 재정 금융정책의 기조가 견실해야함은 물론, 특히 올 들어 있은 두 차례 선거를 통해 연관된 물가 불안을 해소시킬 종합적인 경제 안정 대책과 고도의 유연성을 지녀야함은 물론이다.
이 같은 연관 정책의 재정비를 강조함과 아울러 외환 정책에 관한 한 우리는 현재의 운영방법이 사실상 단일 변동 환율의 묘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거듭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비록 외환 관리 체제상 가격 기구를 활용하는 환율 변동 메커니즘에 주어진 여건은 크게 제약받고 있다 할지라도 최근 수년간 강행해 온 바와 같은, 지나치게 수급 균형을 무시한 인위적인 시장 조작은 장기적으로 볼 때 불합리한 저 환율의 고착 경향을 탈피하기 어렵게 하는 것으로서 결코 바람직 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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