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사고] '빈차 지하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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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3일 오전 9시30분 대구지하철 동대구역.

1호선 30개역 가운데 승객이 비교적 많은 4개 관리역 중 하나지만 승강장엔 10여명이 채 못되는 승객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이윽고 안심행 전동차가 도착했으나 정원 1백20여명인 차량 1칸당 승객은 고작 2∼3명 정도.

2주일여가 지났지만 대구지하철은 이번 참사의 악몽을 떨치지 못한 시민들의 기피로 ‘유령열차’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따라 안전장치 없는 운행재개 반대 및 운행적자 가중에 따른 시민혈세 낭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대구시와 지하철공사는 사고 이튿날인 지난달 19일부터 1호선 노선의 중간구간(동대구역-교대역)을 제외하고 동대구역-안심 구간과 교대-대곡역 구간에 전동차를 투입,반쪽 운행을 재개했다.

3일 동대구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던 승객 윤모(63·대구시 동구 용계동)씨는 “병원 가는 길이 편해 어쩔 수 없이 이용하지만 나도 모르게 출입문 가까이 자리잡는다”며 걱정스러워했다.

일부 젊은 승객이 출입문 작동 핸들을 조작해 보거나 비상벨을 눌러 보는 등의 행동을 보여 승무원을 긴장하게 하는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대구지하철공사 측은 운행재개 직후에는 하루 2만여명이 이용하는데 불과했으나 지난주 말부터는 3만여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고 이전의 하루 평균 이용객 14만7천여명에 비하면 20% 수준인 셈이다.

이에따라 승객 부족으로 사고 이전에도 하루 8천여만원에 달했던 대구지하철의 운행적자가 사고 이후 하루 1억원을 넘기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사고의 희생자 가족과 대구지하철노조 등은 사고 직후부터 “안전대책 없는 운행재개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실종자가족대책위 관계자들은 “대구시의 졸속 운행재개는 성급한 사고현장 처리와 함께 이번 사태를 조기에 얼버무리려는 처사 중의 하나”라고 분개했다.

이에 대해 대구지하철공사 관계자는 “소수라고 하더라도 생업을 위해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는 시민을 위해서는 지하철 운행을 무작정 멈출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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