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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 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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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W·버로즈」저 『미생물학』 교과서를 보면 세계 지도 중에서 인도는 유달리 흑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상장을 두른 듯한 이 흑색은 동「파키스탄」으로 번져갔다. 콜레라의 중심지가 바로 이 흑색의 지도로 나타난 것이다.
그 주변은 그림자처럼 회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서로는 이란까지, 동으로는 중국의 양자강변까지 길게 누운 그림자. 양자강의 이동에서 한반도까지는 좀더 엷은 회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마치 먹물이라도 번진 것 같은 변두리 지역이 우리 나라이다.
「콜레라」는 인도의 「갠지스」강을 중심으로 대개 세 개의 흑색 루트를 따라 확대된다. 그 하나는 「페르샤」를 거쳐 「러시아」대륙으로, 다른 하나는 바다를 건너 중국 대륙으로, 또 하나는 「아라비아」를 거쳐 이집트로-.
중국으로 번진 「콜레라」는 5천8백㎞의 긴 강인 양자강을 따라 길고 긴 여행 끝에 동정호에 이른다. 중국의 광활한 호남 평야를 다스리는 이 호수는 「콜레라」를 골고루 창궐시킨다.
1817년 역시 인도에서 번지기 시작한 「콜레라」는 1년여에 걸쳐 육지를 타고 중국으로, 그 다음 해에는 「실론」으로 전염되었다. 그러나 이 「콜레라」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1820년엔 서「아프리카」로 원정을 했다. 그 여세는 3년이나 더 계속되어 「러시아」와「유럽」을 휩쓸었다.
그후 3년-. 콜레라는 거듭 고개를 들고 똑같은 「코스」를 따라 세계의 지도를 종횡 무진으로 더럽혔다. 1926년의 「콜레라」는 유럽은 물론 만주에까지 끝닿은 데 모르게 퍼졌다.
그후 또다시 3년-. 1930년엔 북으로 소련의 「모스크바」까지, 서로는 유럽의 독일, 아니 『신사의 나라』 영국에까지 「콜레라」가 밀려들어갔다. 그 맹위야말로 「징기스칸」의 그것을 넘고도 남음이 있었다. 2년만에 유럽에서 북미 대륙으로 건너가 그 광활한 대륙을 또 회색으로 물들였다.
그 후에도 인도 산 「콜레라」는 거의 4, 5년이나 계속해서 이 지상에 먹칠을 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다. 아마 양극을 제외하고는 이 『암흑의 병』을 앓지 않은 곳이 없었을 것 같다.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마저 1893년 인도산 「콜레라」에 걸려 쓰러지고 말았다.
최근 외신은 인도 동부의 「콜레라」가 거듭 확대일로에 있는 것을 전해주고 있다. 벌써 사망자만 1만명. 인도 보건상 「샹카」씨는 『그만 항복하고 말았다』고 실토했다.
전세기의 그때나 문명 세기인 현대에나 그 원시적인 질병에서 신음하고 있는 인류의 처지가 새삼 서글프다. 우리도 회색의 지도를 면할 대책이 든든한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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