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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자유, 자존감을 일깨워주는 예술가의 소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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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이것은 화가인가, 투우사인가. 작업실서 그림을 그리면서 이렇게 차려입은 건 저 앞에 있을지도 모를 모델이자 관객을 위해선가. 평생 인물화가로 살아온 고야(1746∼1828)이니만큼 그럴지도 모르겠다.

쉰이 다 돼 가는 마당에 이런 짧은 재킷과 꼭 끼는 바지는 좀 안쓰럽다. 살집 있는 허벅지가 터질 듯하다. 우아하게 상반신만 그려도 될 텐데 굳이 빛을 등지고 선 옆모습 전신상으로,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은 자기 모습을 가차없이 노출시켰다. 모자챙엔 촛대로 쓰는 고리가 달렸다. 당시 화가들은 초를 꽂은 모자를 돌려가며 인공 조명으로 활용했다. 고야는 이 같은 ‘업계의 비기(秘器)’조차 감추지 않았다. 애매하게 큰 모자 때문에 더 짓눌려 보이는 짧은 비례의 자화상. 화가가 그린 자기 모습이니 정도껏 미화해도 애교로 봐줄 준비가 돼 있는 이 관객, 조금은 안타깝다.

 도금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미술학교를 다니고, 궁정 장식용 태피스트리의 밑그림을 그리다가 수석 궁정화가가 되기까지, 고야는 과로라 할 만큼 많은 그림을 그렸다. 주로 왕족을 비롯한 세력가들의 초상화였다.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고향의 어머니와 가족들을 건사했고, 그렇게 해서 만든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그렸다. 수많은 대형 주문 초상화를 제작하면서, 작은 캔버스에 아무도 주문하지 않았을 자기 모습을 그릴 때 화가의 심정은 이랬을까.

프란시스코 고야, 작업실의 자화상, 1790∼95, 캔버스에 유채, 42×28㎝, 스페인 마드리드 산 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 소장.

“그는 뚱뚱하고 키가 작으며 지저분하고 수염도 깎지 않았으며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었지만 사실은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명안은 가지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본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있다. 이것이 그려진 그가 천명하는 바이다.”(로라 커밍, 『화가의 얼굴, 자화상』, 아트북스)

 출세를 위해 다양한 권력자들 아래서 일하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자기만의 그림을 그렸다.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소망하며 자발적으로 그린 그림은 어둡고 비관적이다. 그런 그의 그림이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것은, 자존감을 일깨워주기 때문이 아닐까. 모두가 저 하늘의 별이 될 수는 없다. 현실은 야근에 시달리며 도심 고층 건물을 밝히는 형광등이다. ‘하고 싶은 일’뿐 아니라 ‘해야 할 일’에서도 완성도를 높이고자 분투하는 것 또한 자존감의 발로다. 그런 면에서 다음 주엔 고야가 주문 제작한 초상화 중 최고 걸작이라 할 ‘카를로스 4세 일가 초상’을 소개하겠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