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왕 포수' 박경완 이젠 2군 지휘봉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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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00년 5월 19일 프로야구 현대-한화 경기가 열린 대전구장. 6회 초 타석에 들어선 현대 박경완이 투수 김경원의 공을 받아쳤다. 쭉 뻗어나간 타구는 왼쪽 펜스를 훌쩍 넘은 뒤에도 비행을 멈추지 않았다. 비거리 130m 장외홈런. 앞선 세 타석에서 모두 홈런을 친 박경완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최초의 4연타석 홈런을 터뜨렸다.

 4연타석 홈런은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루 게릭(뉴욕 양키스·1932년) 등 네 명만 기록했다. 77년 역사의 일본에서도 오 사다하루(요미우리·1964년)가 단 한 번 맛봤다.

 ‘포수 홈런왕’ 박경완(41·SK·사진)이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소속팀 SK 구단은 “박경완이 내년부터 퓨처스(2군) 감독을 맡는다”고 22일 밝혔다. 박경완은 4연타석 홈런을 비롯해 2001년 20홈런-20도루, 2010년 개인 통산 300홈런 기록을 세웠다. 2002년 포수 최초로 40홈런을 넘긴 주인공이자, 아시아의 홈런왕 이승엽(37·삼성)이 일본으로 진출한 직후 국내 홈런왕(2004년 34개)에 오른 선수이기도 하다. 통산 314홈런을 때리며 이만수(55) 현 SK 감독(252홈런)이 보유한 포수 관련 홈런 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박경완은 이 감독 밑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전주고 졸업 후 1991년 쌍방울에 입단했을 때 박경완은 연봉 600만원을 받는 연습생 신분이었다. 그러나 박경완은 조범현(53·현 KT 감독) 코치의 혹독한 지도를 받아 최고 포수로 성장했다. 많은 팬들은 박경완의 홈런을 기억하지만 그는 명석한 두뇌, 헌신적인 투수 리드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안방마님’으로서 능력이 더 뛰어났다.

 때문에 박경완은 ‘우승 청부사’로 불렸다. 현대로 트레이드된 이후 1998·2000년 한국시리즈(KS) 우승을 리드했고, 김성근(71·현 고양원더스 감독) 감독을 만나 한 단계 더 성장하며 세 차례(2007·2008·2010년)나 SK의 우승을 이끌었다. KS에서 다섯 번이나 우승한 박경완은 2000 시드니올림픽(동메달),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준우승),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금메달) 국가대표로 활약하기도 했다. 수많은 우승을 이끌며 박경완은 이미 ‘그라운드의 감독’으로 불렸다.

 부상과 체력 저하로 그는 지난해부터 전력 외로 분류됐다. 은퇴는 예정된 수순이었으나 코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2군 감독에 오르는 건 전례없는 일이다. 민경삼(50) SK 단장은 “박경완의 지도자 자질은 이미 충분히 검증됐다”고 설명했다.

 모든 마무리가 그렇듯 그는 시원섭섭한 모양이다. 박경완은 “언젠가는 은퇴를 해야 하는데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했다. 지금 마무리하는 게 명예로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젊은 선수들과 융화하고 싶다.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배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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