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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작가가 본 유세 풍경|내일을 위한 경청|한 표는 생각한다|이호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가령 국회의원 선거를 「우리 구역의 나라일 심부름꾼, 내손으로 뽑아 보내기」라고 했더면 어떨까. 그 절실도가 조금은 더 간절하지 않았을까. 직접 피부로 와 닿는 느낌이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도 그렇다. 국회의원이라는 허황한 명함보다 「서대문 병구에서 나라일 심부름꾼으로 뽑힌 사람」 혹은 「나라일 심부름꾼이라고 명함에 박는다면 지금보다는 어느 구석이 달라도 다른 점이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헛가락 부리는 것만이라도 조금은 줄어 들었을 것이다.

<「나라일 심부름꾼」이라면>
자기 자신들을 국회의원이라는 명칭으로 의식하지 않고, 「그 구역의 나라일 심부름꾼」이라는 명칭으로 의식하는 그 차이에서만도 몸짓·거조·국회 안에서의 활동·책임감 등등 엄청난 차이가 날 것이다. 한데 유세장이라는데 더러 가보면, 왕왕 거리는 「마이크」소리로 그런 소리가 더러 안 들리는 것도 아니다.
『유권자 여러분, 불초 소생을 다시 한번 여러분의 심부름꾼으로 뽑아 주십시오. 국회에 보내 주십시오.』
그러나 그 소리가 절대로 곧이 안 들린다. 『뭐? 심부름꾼. 흥, 좋은 소리 허네.』 반「트럭」을 거꾸로 세워놓고, 뒤의 짐 싣는 자리가 연단이다. 바로 밑에 연사들이 몇 명 줄 지어 앉아 있다. 청중은 안 모여든다. 개인 유세장이다..
『오늘 저녁 7시부터…』가 웬걸, 아홉시가 넘어서야 시작이 되었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에 연단 근처에만 시골의 밤 방아 찧는 방앗간처럼 불빛이 환하다. 무언지 부정하고 불결하고 천하기까지 하다. 연사들의 얘기도 별로 알맹이가 없는 것 같다.

<유권자·국회는 이웃 같아야>
『유권자 여러분, 또 과거를 돌아 봅시다. 신라·고구려·백제·고려·이조 할것 없이 우리는 늘 외세의 침략만 당해 왔습니다. 아, 이제야 말로 우리도‥』
도대체 「유세」라는 용어도 그렇다. 하필이면 「유세」라는 매가리없는 용어를 붙였을까. 무슨 장난 놀음 같은 어감이다. 슬슬 유람 삼아 유람 기분으로 설득을 한다는 것일까. 선거풍토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우선 유권자가 선거라는 행위에서 얻어지는 진짜재미를 맛보아야 한다. 송두리째 같이 썩어들고 타락하는 그런 재미가 아니라 진짜 재미를.
그러한 진짜 재미를 맛보려면 국회라는 동네는 처음부터 너무나 멀다. 뽑아놓고 나면, 저들끼리 모여들어 앉아서 무슨 흥정이 오고 가는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대낮에 한밤중에 무슨 일이 벌어지건 멋대로다.
선거란 내가 내손으로 누군가를 진짜 심부름꾼으로 뽑아서 진짜의 재미를 맛보아야 하고 그렇게 진짜의 재미를 맛보려면 뽑힌 자와 뽑아준 자가 늘 잔 걱정 큰 걱정 같이 나누면서 한 이웃에서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조 말고 민주의 길로 한 표>
반장 선거·통장 선거·이장 선거가 정말로 똑똑히 이루어져서, 반장을 통한, 통장을 통한, 이장을 통한 반·통·이 생활이 건실해지고 그렇게 재미를 느낄 때, 그것이야말로 알짜 선거 맛인 것이다. 그게 시초요 출발점이다. 그런 계통을 밟아서, 통로를 뚫어서 국민과 국회의 혈맥이 닿고, 혈류가 흘러질 때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토착화가 아닐까.
민주주의는 험한 길이다. 무너지면 닦고, 닦고 나서 또 빛을 내도 가야할 길이 있는 것이다.
결코 자조하거나 자기함이 없이, 그 길을 향해 한 표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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