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양 속의 몸부림… 영화 산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텔리비젼」이 출현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3대 기업의 하나로 각광 받았던 영화 산업이 「텔리비젼」이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사양 산업으로 전락, 이제 영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퇴조를 보이고 있다. 「뉴요크·타임스」가 보도한 「할리우드」영화계의 근황과 전문가들이 진단한 한국 영화의 문젯점, 그 진흥 방안을 알아본다.

<한국의 경우>「레저·붐」에 밀려 불황에 허덕
금년에 접어들면서 국산 영화 제작 업계는 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걷더니 3, 4월부터는 거의 모든 영화 제작이 「올·스톱」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영화 진흥 조합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되기까지의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국내에서의 이른바 「메이저·컴퍼니」임을 자랑하던 T영화사가 거액의 부도를 내고 도산 직전의 위기에 처해있는가 하면 영화계를 좌우하던 지방 흥행사들의 돈줄 마저 완전히 막혀 한국 영화계는 이것으로 끝장이 아닌가 하는 기우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 여파로서 한때 30여 편의 겹치기를 자랑하던 「톱·클라스」 배우들이 『할 일이 없어 심심해 죽겠다』며 「레저·붐」에 휩쓸려 다니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30여만에 달하는 국내 영화 산업 인구가 휴직 상태에 돌입하게 된 것은 작지 않은 문젯점으로 「클로스업」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 영화가 뚫고 나가야 할 돌파구는 어디에 있는가. 18일 저녁 아숙원에서 열린 「한국에 있어서의 영화 진흥의 방향」을 주제로 한 토론회 (「영화 예술」지 주최) 는 영화계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참석 한국 영화의 방향을 진지하게 모색하여 주목을 끌었다.
박상호씨 (극장 협 대표) 에 의하면 영화 관객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를 보여 작년 한해만 해도 69년보다 무려 7백만명이 감소된 1억6천4백만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금년에 들어서도 1월부터 4월까지 소위 영화 관람의 「골든·시즌」에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만명이나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편당 관객 동원에 있어서도 69년에 5만 이상이 방화 32편, 외화 47편, 10만 이상이 10편, 23편, 20만 이상이 4편, 6편이던 것이 70년에는 14편·34편, 8편·25편, 20만 이상은 방화 없이 외화만 3편으로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박씨는 말했다.
영화 관객이 이처럼 감소되고 있는 것은 「텔레비젼」의 대대적인 보급, 「스포츠」등의「레저·붐」 따위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지만 내적 요인은 영화 제작 과정의 모순성과 그에 따른 저질성에 있는 것이다.
강대진씨 (제협 회장) 는 한국에서의 영화 제작이 아직도 기업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영화 1편의 제작비가 1천만원∼1천5백만원이 소요되는데 그중 70∼80%가 지방 흥행사에 입도 선매되어 연수 표로 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설사 그 영화가 성공은 거두었다 해도 연수표의 이자를 갚고 극장에 뺏기고 세금에 뺏기고 나면 다시 빈손이 되어야하는 게 한국 영화 제작자들의 현실이라는 것.
여러 햇 동안 이러한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한국 영화계는 김진영씨 (영화 진흥 조합 이사장) 의 말대로 사양 단계를 지나 재기 불능의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김씨는 이제 과연 한국에서 영화란 것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를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며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면 융자 따위의 소극적인 대책보다는 국가의 정책적 문제로 다뤄져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까지 정부의 영화 정책이 보잘것없었으며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시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참석자 전체의 의견이었다. 비영화인으로 토론에 참석한 조연현 (예륜 위원장) 조덕송 (조선일보 논설위원) 양씨도 당국이 입장료는 옭아매고 검열은 철저히 하는 등 영화 발전을 저해하는 정책만 쓸 것이 아니라 거시적 안목에서 우리 나라 영화를 개발 육성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국의 영화 육성 방안이 마련된다 해도 지금과 같은 영화계 내부적 혼란이 계속 된다면 오히려 역효과. 조덕송씨는 감투싸움 이권다툼으로 나타나는 영화계 내분이 불식되는 것이 육성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영화계의 자세를 나무랐다.
마지막으로 영화인을 대표한 김강윤씨 (영협 회장) 는 이러한 불황속에서도 『화녀』 『분례기』등 성공적인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것은 한국 영화에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라고 풀이, 1년에 2백여편씩 마구 제작해 내는 태도를 지양하고 질 위주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급선무라 지적했다. <정규웅 기자>

<미국의 경우>관객 취향 따라 성인 영화에 치중|군소 업자·독립「프로듀서」진출 현저
한때 가장 유망한 사업으로 지목되던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은 6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텔리비젼」시대에 밀려 사양 산업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MGM·「워너·브러더즈」·「파라마운트」등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 영화사들의 주식은 속속 타 기업의 업주들에게 넘어갔다.
70년대에 접어들면서 판도가 바뀐 「할리우드」의 영화 업계는 영화 산업의 재기를 위해 꽤 끈질긴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영화 업계의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관건을 쥐고 있는 영화 관객들은 외면의 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영화의 제작 편수는 점점 불어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71년1월부터 4월까지 4개월 동안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는 모두 1백31편인데 이것은 작년 같은 기간동안의 95편과 비교하면 무려 40%나 늘어난 것이다.
영화 관객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제작 편수가 늘어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은 금년 4개월 동안 개봉된 1백31편 가운데 불과 42편만이 「파라마운트」·「MGM」·20세기「폭스」등 이른바 「메이저·컴퍼니」의 작품들이라는데서 쉽사리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작년 같은 기간의 95편 중 41편이 「메이저·컴퍼니」의 작품인 것을 감안한다면 영화 산업으로서의 영화 제작은 답보 상태를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괄목할만한 진출을 보이고 있는 것은 군소 업자들과 독립 「프로듀서」의 작품들이다. 작년에는 「메이저·컴퍼니」와 41편과 별로 차이 없는 54편이 이들의 제작 영화였으나 금년에는 두배 이상으로 「메이저·컴퍼니」를 양적으로 압도한 것. 독립「프로듀서」에 의한 작품들은 제작비도 많이 들지 않을 뿐더러 관객 동원에 특별한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제작비 정도를 뽑아내는 것이 별로 힘들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많아질 전망이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뉴요크」같은 곳에서는 「뉴요크·컬추럴·센터」같은 비영리적인 영화상 영처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군소 업자나 독립「프로듀서」들이 만들어 내는 작품들은 거개가 「X-레이티드·필름」(미성년자 관람 불가) 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한 예로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개봉된 『「스튜어디스」들』 이란 영화는 비번중인 「스튜어디스」와 「파일러트」들이 벌이는 성희를 다룬 것인데 3주째에 접어들어 1만8천 「달러」를 벌어들이는 호조를 보였다는 것.
제작자 불명의 이런 영화들이 자꾸 쏟아져 나오자 MGM 같은 대회사들은 『우리는 이제「X-레이티드·필름」은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할 단계에 이르렀는데 문제는 대감독이나 대 배우들까지 대회사를 기피하는 현상을 보여 「메이저·컴퍼니」의 고전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비록 산지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엘리아·카잔」이나 「킹·뷔더」같 은 명성 있는 감독들이 스스로 제작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앞으로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뉴요크·타임스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