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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기획사의 성벽 너머 진짜 세상 어땠나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5호 21면

당대 최고의 대중문화예술인 지드래곤은 ‘무한도전’에서 정형돈과 함께 동묘 시장에 다녀와서 과연 어떤 것을 깨우쳤을까. 수십, 수백만원짜리 옷을 걸치고 나오던 패션 아이콘은 이삼천원짜리 옷이 널려 있는 거리에서 새로운 무대의상 컨셉트라도 건졌을까. 아니면 정형돈 말대로 굳이 런던의 뒷골목까지 갈 필요 없이 동묘 뒷골목에서 이런 옷을 걸치더라도 뮤직 비디오의 품질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걸 깨닫고 이곳에서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찍으려 하게 될까.

컬처#: 지드래곤의 동묘 패션 체험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만 이번 동묘행에서 확실히 건진 게 있어 보인다. 인터넷에서는 싸구려 거리 패션을 걸친 그를 보고 “다시 보니 소탈한 면도 있고 개방적인 면도 있어 보인다”며 달라진 이미지를 말한다. 몇 년 전부터 표절과 대마초 사건 등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킨 뒤 ‘무한도전’에 몇 번이나 나와 망가지기를 자처한 그의 변신은 아마도 기획사가 세운 전략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거대 기획사의 두터운 성벽에서 숨어 있는 비밀스러운 천재 이미지 대신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기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일반인들과 만나는 기회는 자발적으로는 만들지 못한 풍경이었을 듯하다. 천재 소리를 듣는 그의 음악적 감수성이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빨아들여 자신의 음악세계에 조그만 변화라도 가져오는 계기로 삼는다면 그에겐 대단히 소중한 모멘텀이 될 것이다.

지드래곤의 표절과 대마초 사건 등이 비난받을 때 느낀 건 ‘그런 방식으로 살다 보면 그런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어린이 때부터 노래와 춤, 패션만 추구하며 살았고 그것만 생각하고 연구하도록 훈련받고, 다른 사람들과는 별다른 교류도 없이 그 세계에 함몰되다 보면 자신이 추구하는 것만이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 말이다.

좀 더 좋은 노래, 좀 더 멋있는 스타일만이 최고의 목표가 될 때 손쉬운 유혹을 통해서라도 그걸 이뤄내고 싶을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이겨내는 길은 우물 같은 자신의 세상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둘러보는 일일 것이다. 특히 연예인들의 연예인이 돼버린 그에게는 그런 뒷골목길 같은 자극이 확실히 필요해 보인다.

세상에 제일 쓸데없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연예인 걱정하는 일이라지만 요즘 연예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걱정이 될 때가 많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태릉 선수촌 같은 기획사에서 훈련도 그들끼리, 친구도 그들끼리, 연애도 그들끼리 하며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사는 것 같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평범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접할 기회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있다면 온라인으로 SNS나 팬카페를 하며 만나는 팬들 정도?

SNS 상에서의 구설수나 오프라인에서의 말실수가 불거져 나오는 이유도 보통사람들의 균형감각이나 상식의 시선을 가지지 못한 때문 아닐까 . 최고 인기 그룹 버스커 버스커의 김형태나 돌풍을 일으킨 크레용팝, 그에 앞서 시크릿 전효성이 극우 사이트 ‘일베’ 용어를 써서 논란을 일으킨 뒤 “뭔지 모르고 그냥 썼다. 앞으로 조심하겠다”며 대응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걸 보면 평범한 세상 사람들과의 상식과 엄청나게 동떨어져 그저 키득대는 재미만을 최고로 아는 온라인 세계에 파묻혀 있거나, 아니면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도 그런 사이트를 이용하면 안 된다고 판단할 정도의 균형감각을 익힐 노력도 하지 않았구나 싶어 실망스럽다.

단지 용어 한두 개 쓴 것을 가지고 그들을 적대시하거나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까지 비난하는 것 역시 옳지 않지만 적어도 보통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용납되지 않는 것을 가려낼 정도의 안목은 가지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기획사에서도 노래와 춤, 영어 교육만 시킬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의 생각을 알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대중 예술’ ‘대중 문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자신의 말이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SNS 같은 것들이 필수적인 소통의 창이 된 시대라면, 대중의 감성과 생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감수성은 발휘해야 하는 것이 공인의 의무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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