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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오는 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개인 의원에서 근무하고 있는지도 근 4년이 넘는다. 현재 나에게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면 잠을 실컷 자 봤으면 하는 대답이 먼저 나올 것 같다. 정해진 휴일도 없이 일하는 우리 개인병원 간호원들에게 한밤에 두드리는 환자만 없어도 한결 피로를 잊을 것 같다. 하루종일 환자에게 시달리고 또 밤중에 찾아오는 환자를 보려면 그 환자가 왜 그리도 얄미운지 모른다.
더구나 밤에 오는 환자는 대부분 위급한 환자이기 때문에 치료를 끝내도 경과를 보자고 몇 시간씩 기다리고 안간다. 그러자면 밤에도 몇번씩 일어나는 우리는 졸음을 참아가며 환자가 가기까지 옆에서 같이 경과를 보자면 밤에 깨어 있지 않고 고이 잠이 들어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아직도 철없는 소견일까? 아니면 「나이팅게일」정신이 덜배 있는 탓일까?
얼른 진통이 멎어 갔으면 하고 지켜섰다가도 우리의 임무니 만큼 다시 한번 환자의 경과를 살피곤 한다. 갈때쯤 치료비를 요구하면 급해서 치료비를 못 가지고 왔는데 내일 갖다 주겠노라고 가버리면 대부분 그 뒷날엔 아무소식이 없다. 그래서 한밤에 병원 문을 두드리고 오는 환자는 으례 보호자나 환자의 손목을 먼저 보는 습관이 생겼다. 혹시 치료비가 없을 경우 잡혀놓기라도 할 귀중품이 있나 없나를 살피는 졸음이 서린 내 얼굴에는 나도 모를 웃음이 맴돌곤 한다. 남들이 생각하기엔 너무 야박하다고 여기겠지만 그렇게 만드는건 환자들이니 말이다.
정말 인정 없는 의사니 병원이니 하지만 남모르는 봉사활동과 애로를 알고있는 사람은 드물 것 같아 더욱 피로를 느낀다. 【정효영<서울 영등포동6의79 이재춘 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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