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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승자와 패자의 문제|공화당에 바란다|이상희(서울대신문대학원교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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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축제분위기에 젖어있을 공화당에 몇 가지 주문과 고언을 한다.
공화당은 약 6백34만 표를 얻어서 승리했다. 신민당의 김대중후보를 약 94만표 차로 눌러서 이른바 압승을 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제1야당을 몇 표 차로 물리쳤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지지를 어느 정도 획득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6백34만 표라는 숫자는 사실 승리에 도취하거나 축제「무드」에 휩싸일 그런 숫자는 아니다.
이 숫자는 총선거인수의 약40%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총 투표자 수의 반정도인 약52%에 불과하다. 공화당은 역사적인 이 시점에 서서 다시 한번 이 숫자가 갖는 뜻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선거에 있어서는 어떠한 국가에 있어서도 여당이 야당에 비해서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것은 일반적 사실이다. 특히 민주적 제도나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이 확립되어 있지 못한 후진국가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번 선거에 있어서는 공화당이 야당에비해서 조직·자금·행정력의 뒷받침 등에서 월등 유리했다는 것은 하나의 상식이다. 뿐만 아니라 현 정권은 지난 10년 동안에 업적과 성과로서 국민을 설득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유권자의 40%정도에게서만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분명히 많은 문제점을 던져주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정치는 어떤 면에서 보면 국민에 대한 설득과 지지를 획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여하한 정치체제이든 간에 오늘날에 있어서는 국민의 납득과 긍정적 참여를 어느 정도 얻지 않고서는 이미 통치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권이 갖는 국민에 대한 신임도가 절대적인 것으로 등장한다. 이 신임도가 이번 선거에서 총유권자의 40%, 총 투표자의 약 반정도로 나타난 것이다.
신민당의 김대중후보에게 몰린 약 5백40만표에, 기타 후보들의 약18만 표를 합치면 공화당에 대한 명백한 반대표가 5백60만에 달한다. 이들 막대한 반대표가 갖는 비판이나 욕구불만을 듣고도 공화당이 축제「무드」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우기 기권표 약3백20만이 갖는 무관심이나 냉소적 음성적 부정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원래 기권의 생리는 부정적이며 비판적인 것이다. 투표·개표과정에 대한 불신, 나아가서는 정치전반에 대한 불신이나 허탈감에서 오는 현상이거나, 특히는 집권세력에 대한 날카롭고 냉소적인 비판이 감추어져있는 법이다. 3백20만 표에 달하는 기권표가 갖는 뜻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되며 단순한 중립이거나 무색 무성격으로 보아 넘겨서는 오산을 가져올 염려가 있다.
이리하여 명백한 반대표에 기권표를 합치면 무려 8백80만 표라는 숫자가 생겨난다. 이것은 공화당이 이번 선거에서 획득한 약6백30만 표를 2백50만이나 넘는 숫자이다. 이러한 숫자 뒤에서 들려오는 불평·불만의 소리나 차가운 눈초리를 듣고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앞으로 4년간 공화당은 무거운 짐을 지게되었다. 압승을 한 것이 아니라 많은 부정과 비판을 짊어진 채 4년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집권을 하게된 공화당에 바라고 싶은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겠으나 우선 민주화의 촉진이 시급하다. 민주제도가 갖는 장점, 특히 언폰·표현및 집회의 자유, 연구·발표의 자유 등이 더욱 신장되지 않고서는 우리의 사회가 진보 발전할 수 없다. 언론인이나 연구자들에게 비판이나 대안을 제시할 자유가 없는 사회는 멀지않아 정치적 동맥경화증을 일으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특히 부의 균형 있는 발전에 유의하고 근로조건의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거의 모든 불평·부만의 원천은 부의 편재현상 속에 깃들여있는 법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시정하지 않고는 아무리 좋은 정책들을 수행했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현상을 타파하고 중산층을 육성·확장해나가는 길만이 유일한 출구로 남아있다.
사회적 면에 있어서는 부정부패의 제거, 소비적 퇴폐적 사회풍조의 쇄신을 이룩하고, 향락과 소비 속에 가치를 발견할 것이 아니라, 근면과 생산 속에 가치를 재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민족문화의 육성·신장이 시급하다. 외래적 저속문화의 범람으로 하여 민족문화가 갖는 주체적·생산적 가치관이 부정되고, 외국 지향적·사대주의적 가치관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화적 풍토에서는 민족적 자주의식이 굳건히 성장할 수 없다.
확고한 민족적 가치관의 지주 없이는 아무런 발전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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