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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날고, 호텔보다 낫고 … 세계는 공항전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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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015년 완공 예정으로 현재 개·보수 작업 중인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국제공항 조감도. 다국적회사 겐슬러가 설계했다. 공항 자체가 여행지가 되는 ‘공항도시’가 목표다. [사진 겐슬러]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들어설 녹지공간. [사진 희림·무영·겐슬러 컨소시엄]

2011년 개·보수를 끝낸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개막 행사 때 가장 많이 나온 소감은 이랬다.

 “마치 5성급 호텔에 있는 기분이다.”(미국 샌프란시스코 에드 리 시장)

 1952년 지어진 공항을 ‘호텔처럼’ 탈바꿈한 설계회사는 겐슬러다. 미국에 뿌리를 둔, 48년 된 글로벌 회사다. 전세계 44개 국가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겐슬러는 국내에서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2017년 완공)이다. 국내 설계회사 희림·무영과 컨소시엄을 이뤘다. 제2여객터미널 착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키스 톰슨(59) 사장(항공·교통 분야)은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은 곳곳에 녹지와 수목이 살아 있는,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지는 ‘에코 포트(Eco-port)’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항은 현대건축에서 가장 뜨거운 분야다. 규모와 시설, 미학과 기술 측면에 첨단의 경연장이다. 또 한 나라의 문화를 대변하는 외교사절 역할도 한다. 톰슨 사장은 “인천공항이 증축에 나섰듯, 세계 각국이 허브공항을 목표로 공항을 짓고 있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의 발권 공간은 호텔처럼 꾸며졌다. 또 공항 내부 구석구석 자연광이 들어오게 창을 냈다. [사진 겐슬러]

 그가 내세우는 차별화 전략은 ‘호텔 같은 공항’이다. 인테리어 회사에서 출발한 겐슬러는 떠나는 공항이 아닌, 머무는 공항을 디자인하는 데 중점을 뒀다. 항공사 티켓팅 공간을 호텔 컨시어지(맞춤 응대 직원) 공간처럼 꾸몄다. 공항 천장엔 샹들리에처럼 지역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걸었다. 출국 게이트엔 식수대를 놓고 공항 내 의자마다 콘센트를 설치했다. 톰슨 사장은 “기억에 남는 공항이 되기 위해선 공간 구석구석 디테일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30년간 전세계 60개 이상의 공항 건축을 기획·설계한 그는 “공항의 트렌드는 계속 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다.

 미국 공항의 경우 리노베이션이 한창이다. 대다수 공항이 1960년대 초반에 지어진 터라, A380 같은 대형 항공기를 댈 공간이 부족해서다. 또 9·11 테러 이후 공항 보안 검색이 강화되면서 이를 위한 공간도 두 배 이상 늘었다. 톰슨 사장은 “공항 보안 규정에 수화물, 승객 검문 등이 더 추가되면서 공항 건축에 많은 변화가 생겼고, 돈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톰슨

 중동·아시아 지역은 허브공항을 놓고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돈·물류·사람이 오가는 ‘하늘 길’의 중심이 되고자, 기상천외한 개념의 공항을 짓고 있다. 인천공항과 아시아 허브공항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싱가포르 창이공항에는 나비정원이 있다. 공항 내 식물원 같은 공간이 있고, 진짜 나비가 날아다닌다. 중동의 아부다비는 17층짜리 공항을 짓고 있다. “한번도 보지 못한 공항을 만들겠다”는 게 목표인데, 건설비만 3조3500억원에 이른다.

 인천공항이 선도하고 있는 트렌드도 있다. 톰슨 사장은 “공항 내 호텔·상점 등이 잘 구비돼 있어 시내까지 갈 필요 없는 ‘공항도시(에어포트 시티)’를 잘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공항도시는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덴버공항의 경우 기존 터미널에 호텔과 대형회의장·열차역 등을 추가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그는 “인천공항은 공간·동선이 효율적으로 짜여 길찾기가 쉽다. 친한 미국인 CEO가 인천공항 루이뷔통 매장 위치를 외고 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지금 공항 디자인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톰슨 사장은 3가지 키워드를 들었다. ‘호텔 같은 편안함’ ‘스마트폰’ ‘친환경’이다. 그는 “여행자들이 스스로 스마트폰으로 체크인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항공사 발권창구 등이 있는 랜드사이드 공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다면 이런 DIY(Do it yourself) 트렌드로, 미래의 공항은 점점 작아질까. 그의 답은 “노”였다.

 “고객의 요구를 더 세밀하게 분석해 새로운 공간에 대한 수요가 분명 늘어날 겁니다. 중동 지역 승객이 늘면서 기도실이나 할랄(곡류·채소·해산물 등 이슬람에 허용된 식품) 음식점 등을 만드는 것처럼요.”

 톰슨 사장이 고객으로서 가장 선호하는 공항은 ‘샌프란시스코 제2여객터미널’이다. 공항밥이 맛있단다.

  “밤늦게 도착하면 호텔로 이동해 저녁을 안 먹고, 유일하게 밥을 먹고 숙소로 가게 하는 공항입니다. 현지에서 생산하는 와인을 곁들인, 훌륭한 음식을 내놓는 레스토랑이 많아요. 게코 레스토랑, 라파팜 레스토랑…. 그러고 보니 좋은 공항 디자인이라는 게 참 단순하고, 단순한 게 좋은 거네요.”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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