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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개혁은 이익과 이념의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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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강일구]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의 ‘자식(孩子)’으로까지 불리는 상하이 자유무역시범구(FTZ)가 지난달 말 출범했다. 중국은 이곳을 경제 치외법권지역으로 만들어 세계 최대의 물류 중심이자 금융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에 차 있다. 중국이 마침내 글로벌 경제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전초기지 건설에 나섰다는 평가다. FTZ는 경제실험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이곳에선 중국 국내에선 접속이 불허된 트위터나 페이스북, 뉴욕타임스 사이트 연결도 가능하다. 경제개혁이 정치개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세계가 FTZ를 주목하는 이유다.

 리커창의 FTZ는 중국의 과거 두 가지 개혁모델을 벤치마킹했다. 하나는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라(摸着石頭過河)’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실험지역(試點) 건설방안이다. 덩은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앞서 광둥(廣東)성 선전을 시범지역으로 설정했다. 리커창 또한 완전한 개방경제를 구축하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상하이 푸둥(浦東)의 4개 지역(28.78㎢)을 실험지역으로 지정했다. 앞으로 몇 년 후에는 푸둥 전체(1210.4㎢)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하나는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의 외부 힘 빌리기 방법이다. 주룽지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추진한 이유 중 하나는 외국기업과 중국 국유기업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외부의 힘을 빌려 국내에서 독과점 지위를 누리던 국유기업에 충격 요법을 가하고자 했다. 이번 FTZ의 개혁 타깃은 중국 금융이다. FTZ 안에 민간자본과 외국 금융기관이 중외(中外)합자은행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중국의 관치(官治)금융에 개혁의 칼날을 들이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FTZ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개혁의 길은 이제까지 평탄한 적이 없었다(改革之路從無坦途)”고 말했듯 세상의 모든 개혁에는 언제나 저항이 따르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FTZ 출범 현판식에 리커창의 모습은 없었다. 홍콩의 한 평론가는 이를 두고 “아이가 태어나는 날 아비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FTZ가 ‘리코노믹스(리커창 경제학)’의 첫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례적인 일이다.

 왜 그랬을까. “이익을 건드리는 것이 영혼을 건드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리커창의 말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FTZ 출범으로 이익을 침해당하게 된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그만큼 큰 것이다. 금융 규제기관인 중국 은행감독위원회와 증권감독위원회가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건 물론이다. 리커창이 내부 회의에서 반대 세력에 맞서 책상을 두드리며 화를 냈을 정도라는 후문이다.

 기득권 세력은 누구인가. 크게 ‘홍이대(紅二代)’와 ‘관이대(官二代)’ 등이 거론된다. ‘홍이대’는 건국 초기 장관이나 장군 이상의 고위 직책을 역임했던 이의 후대를 가리킨다. 개국공신 보이보(薄一波)의 아들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 등이 예다. 이에 반해 ‘관이대’는 그저 고위 관료의 자녀를 일컫는 말이다. 선대의 후광 없이 중국 지도부에 진입했던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나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등은 ‘홍이대’가 아니다. 그들의 자녀가 ‘관이대’에 속한다.

 중국 내 입김은 물론 ‘홍이대’가 단연 세다. 이들이 기업의 오너에 해당한다면 ‘관이대’는 최고경영자(CEO) 정도로 치부된다. 중국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홍이대’란 것이다. 이 같은 사고의 배경에 깔려 있는 게 ‘강산사유(江山思維)’다. 선대가 싸워 얻은 강산은 후대가 차지해야 마땅하다(老子打江山 兒子坐天下)는 인식이다. 그래서 공산당이 일궈낸 중국의 산하는 흔히 홍색강산(紅色江山)으로 불린다. ‘홍이대’는 자연히 그 색이 변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홍색 가문에서 적어도 한 명씩의 권력자는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던 게 덩샤오핑 다음가는 권력을 지녔던 천윈(陳云)이었다고 한다. 덩 또한 이 말을 묵인했고 이후 중국엔 하나의 규칙이 생겼다. 한 집에서 한 명은 관료의 길을 걸어 정치권력을 추구하고 나머지 가족은 비즈니스로 나아가 치부(致富)의 길을 좇는 것이다. 중국에서 부패의 온상이라고 지적되는 권력과 돈의 거래(權錢交易)가 성행하게 되는 이유다.

 관료는 기업에 각종 우대정책을 제공하고 기업은 관리의 이익을 보장한다. 결국 ‘홍이대’는 국가의 신임과 풍부한 정치자원을 활용해 중국의 부동산과 석탄, 철강, 금융 등 노른자 산업을 장악하고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따라서 개혁이 성공하려면 이 강산이 내 것이라는 ‘강산사유’부터 깨야 한다는 게 시진핑의 박사 학위 논문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중국의 저명 사회학자 쑨리핑(孫立平) 칭화(淸華)대 교수의 진단이다.

 결국 중국의 개혁은 이익과 이념의 대결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일부 기득권층과 중국 인민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중국꿈(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해 기득권 부수기에 나서려는 개혁 이념의 중국 지도부 간에 펼쳐지는 다툼이다. 그 승패는 중국의 리더십이 얼마나 강력한가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시진핑은 얼마 전 ‘이익을 꾀하려면 마땅히 천하의 이익을 꾀하라(計利當計天下利)’는 장징궈(蔣經國) 전 대만 총통의 좌우명을 거론했다. 일부가 아닌 모두의 이익을 꾀하려는 중국 지도부의 개혁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