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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전면내란 돌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6일 동파키스탄의 아와미 연맹 당 지도자 무지부르·라만씨는 동파키스탄의 일방적 독립을 선언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야햐·칸 파키스탄 대통령은 동파키스탄에 다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증파함으로써 파키스탄은 전면내란상태에 돌입, 도처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파키스탄은 동파키스탄 자치요구문제를 둘러싸고 47년 8월의 독립이래 최대의 정치위기에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파키스탄에서의 이번 격동의 직접적인 요인이 노출되기는 작년12월7일의 제헌의회 의원총선거에 있었다. 민정이양을 위한 동 총선에서 라만 당수가 영도하는 동파키스탄의 아와미 연맹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여 제1당이 되었고 부토를 당수로 하는 서파키스탄 중심의 인민당은 제2당이 되었던 것이다. 이 선거에 따른 제헌의회는 지난 3월3일 개회될 예정이었으나 부토 당수가 출석을 거행함으로써 야햐·칸 대통령은 타협안으로서 의회소집을 일시 연기했던 것이다.
그러나 라만 당수를 비롯한 동파키스탄 측 정당·사회단체지도자들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여 동파키스탄 전역에 걸친 총파업이 일어났고, 또 이에 맞서 중앙정부는 군대를 파견하여 결국 비극적인 유혈사태로까지 번지고만 것이다. 동파키스탄의 완전한 자치요구를 비롯해서 의회소집일자부터 동 측에 유리한 날을 택하도록 강력한 요구를 내세우고 있는 동파키스탄 정당들의 요구에 대하여 야햐·칸 대통령은 25일 의회소집을 결정했으나, 이번에는 다시 라만 당수가 이에의 출석을 거부하여 사태는 험악일로를 치닫게되고만 것이다.
이번 사태와 더불어 파키스탄은 하나가 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동·서 두 파키스탄으로 갈라지는가의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 원래 동·서파키스탄은 다같이 회교를 신봉하고 있다는 종교적 이유만으로 하나의 파키스탄 공화국으로 됐지만 역사적으로 그 대립은 격심했다.
동·서파키스탄의 거리는 약1천9백㎞ 떨어져있으며 동·서는 우선 언어부터가 다르다. 동파키스탄에서는 벵골어, 서파키스탄은 우르드어가 각각 공용어로 돼 있어 동·서파키스탄에 공통된 공용어는 영어이다. 동·서간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는 회교조차도 동에 있어서는 그것이 힌두교와 불교가 혼합된 개방적인 것임에 반하여, 서파키스탄 주민이 믿는 회교는 계율이 엄격한 정통파라고 한다.
동파키스탄의 면적은 서파키스탄의 약6분의1정도이지만 총 인구 약1억2천만명중 56%가 동파키스탄에 살고 있다. 그러나 동·서 국민사이의 소득격차(67년 서=436루피, 동=313루피)는 오히려 전도돼있고, 정부고급관리·주지사·군 장교들은 대부분이 서부파키스탄 출신에 의해서 장악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아유브·칸 시대 서부출신은 각료들의 3분의2, 전체공무원의 64%, 군장교의 80%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동부의 불만은 이런 것에만 그치지 않고 경제적으로 정부의 개발사업이 서부에만 치중되고 있는데도 있었다. 즉 동부의 황마수출은 전무역수입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이 동부에 거의 환원되지 않고 서부개발사업에만 집중됐다는 것이다. 기본 민주주의이라는 독재적 지도체제 아래 10년 동안 강력한 정치적 안정을 추구하던 아유브·칸 정권이 3년 전인 69년3월25일 물러서게 된 것도 역시 동파키스탄의 반란 때문이었다.
이제 다시 격동하는 파키스탄이 어디로 갈 것인가는 좀더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한 남아시아의 혼란은 음양으로 동남아 또는 동부 아시아 전역에 불안을 미칠 것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혼란에 외부의 간섭이 가세할 때 그것은 아시아와 세계평화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험을 가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파키스탄의 정정이 우선 내부적으로 원만한 타협아래 가라앉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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