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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기독청년회(13)|오리 전택부(제자는 필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 의원단 방한>3·1운동이 있은 다음해 1920년 여름의 일이다. 미국회상하의원단일행 50명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국내 지도자들은 환영준비위원회 본부를 YMCA안에 두고 동아일보의 장덕준씨(장덕수씨의 친형)와 경제회의의 이풍재씨와 YMCA의 신흥우씨 등 세 사람을 뽑아 실무를 맡게 하고 환영식은 YMCA 강당에서 하되 사회는 윤치호씨가 하고 환영사는 이상재씨가 하게 했다.
8월 하순 기다리던 일행이 남대문 정거장에 도착했다. 조선총독부는 『경관 3백명을 동원하여 경계를 하며 머리끝까지 선뜻 선뜻 말발굽 소리와 덩그렁 거리는 군도소리에 시중은 마치 전쟁이나 난 듯했다.』 왜냐하면 각 신문이『한민족이 제2차 독립운동을 시도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도착한 미국 의원단들의 일정은 하룻밤을 조선호텔에서 자고 그 이튿날 총독부 관서와 그 밖의 일인들의 기관 외에 남산공원·창덕궁·경복궁·비원·상품진열관등 관광시설을 시찰한 다음 그날 저녁에 떠나는 짧은 일정이었다.
처음부터 일본인들은 한국인들과 만나지 못하도록 방해했기 때문에 한국인 측의 환영순서가 정식 스케줄 에 들어있지 않았다. 이상재씨와 신흥우씨는 다른 간부들과 같이 일행을 정거장에서 그들을 맞이할 때에 한국인들이 따로 만나고싶다는 뜻을 말하기는 했다.
그러나 워낙 일본사람들이 그 일행을 재빨리 빼돌리고 데리고 갔기 때문에 충분한 의견전달을 할 수가 없었다.
한국인 환영회 간부들은 극도로 초조해졌다. 일행 조선호텔 에 들어간 다음에는 더군다나 만날 수 없었으며, 이때까지 준비한 것이 다 허사가 되고 마는 위기에 봉착하게됐다.
그리하여 신흥우씨는 결심을 하고 월남 이상재 선생을 모시고 조선호텔로 갔다. 가서본즉 호텔 문간에는 일본정복순사가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이럴 때일수록 머뭇거린 것 같으면 누구냐고 물을 것이므로 쑥 들어갔다.
호텔 안에 들어가긴 했으나 누구를 찾아야 할는지… 너무도 이른 식전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아직 아침도 안 먹은 모양이고…별수 없이 대합실에 우두커니 둘이서 앉아 있었다.
한참 앉아 있노라니까 어떤 미국사람 하나가 위층에서 내려오기에 다짜고짜로 그에게 교섭을 했다. 다행히 그는 친절하게 대해 주었으므로 전후사정을 말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그 국회의원은 자기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잠깐 위층에 올라가 일행들과 의논하고 온다고 하곤 갔다오더니 그날 오후3시에 환영식장인 YMCA로 갈 수 있다는 허락의 말을 듣게 되었다.
이상재 선생과 신흥우씨는 너무나 반가와서 이 소식을 갖고 YMCA로 달려갔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격으로 이 소식이 잠깐 동안에 온 장안에 좍 퍼지게 되었다. 삽시간에 시중은 희망과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졌다.
그 전날까지도 환영회를 위해 돈을 거두려고 할 때에 응해주는 사람이 없던 것이 그들이 정말 오후3시에 청년회관으로 온다고 하니까 사방에서 돈이 막 쏟아져 들어왔다. 어떻게나 많이 들어왔던지 미처 영수증을 써줄 여유조차 없을 만큼 쏟아져 들어왔던 것이다.
준비위원들은 그 돈을 가지고 일행에게 줄 선물을 마련했다. 그리고 곱게 싸서 제법 선물답게 리번까지 달아 놓았다.
이렇게 흥분 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여 준비하고 있을 때에 조선총독부에서 기별이 오기를 일본총독이 의원단을 조선호텔에서 오찬회에 초대할 터인데 이상재씨하고 신흥우씨를 와달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이 전갈을 놓고 간부들과 의논하게 되었다. 그 결과 총독부 측에서 한국인의 환영계획을 못하게 하지 않는 이상 가는 것도 좋다는 결론을 얻게되었다. 그런데 뜻밖에 조금 있다가 의원단 측에서 편지가 오기를『오후3시에 가려고 했지만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갈수가 없게 되었으니 대단히 미안하다』 는 내용의 편지였다.
이것은 물론 일본인들의 악착같은 방해로 해서 취해진 사고이었다.
그래서 다시 간부들이 모여서 의논하기를 첫째로 대표 2인을 오찬회에 보내려던 것을 취소하고, 둘째로 정성을 들여 마련한 선물 50여개는 조선호텔로 보내기로 했다.
이상재씨와 신흥우씨는 아침도 못 먹고 실망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환영회에 참석하려던 군중들도 슬슬 다 헤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그 의원단 일행 중 헐스맨 이란 의원이 단독으로 자동차에 성조기를 달고 청년회관으로 찾아왔던 것이다.<오리 전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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