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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마다 ‘박정희 마케팅’ … 정부, 예산 지원 맞장구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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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 개관한 ‘박정희 대통령 민족중흥관’에서 시민들이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사진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2월 서울 상암동에 문을 연 ‘박정희 기념·도서관’ 모습. [중앙포토]

#1 국토교통부는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강원도 철원군의 한 공원 정비사업에 8억원가량을 배정했다. 이 공원 이름은 군탄공원. 하지만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 공원’으로의 명칭 변경이 추진되고 있다.

안전행정부는 올해 새마을운동 지원사업 예산으로 46억여원을 잡아놓았다. 안행부는 그동안 쓴 예산을 포함해 경북의 구미시, 포항시, 청도군에 조성되는 3개의 ‘새마을시범단지 가꾸기 사업’에 국비 462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 중 청도군의 새마을운동 재현 사업엔 농림축산식품부 예산도 들어간다.

충북의 청남대관리사업소는 지난 7월 전국 1만2000여 개의 초·중·고교에 “7월 16일까지 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주간 행사와 특별전에 학생들을 참여시켜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대통령 전용 별장이던 청남대는 이전에도 대통령 특별전을 열긴 했다. 하지만 행사 공문을 충청 지역 학교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보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2 지난해 문을 연 영남대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은 지난 8월 외국인 새마을학 석사 3명을 처음으로 배출했다. 지금도 세계 30개국 학생 50여 명이 재학 중이다. 같은 대학의 ‘박정희리더십연구원’도 지난 6월 중국·일본·호주 전문가가 참여하는 ‘새마을정신 글로벌화 전망과 과제’ 국제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이 연구원 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던 최외출 교수다. 영남대는 지난 6월 ‘새마을학’을 앞세워 교육부가 선정하는 ‘국제협력선도대학’으로 선정됐다. 4년간 최대 총 16억원을 지원 받는 사업이다.

회원 수가 210만 명에 달하는 새마을운동중앙회는 지난 6월 심윤종 전 성균관대 총장을 회장으로 선임했다. 심 회장은 대선 당시 박 대통령 최대 외곽 조직인 ‘국민희망포럼’ 이사장 출신이다. 중앙회는 올해 새마을운동의 개도국 전파와 청년회원 수 확대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최외출ㆍ심윤종, ‘새마을 국제화’에 박차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첫해를 맞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재조명하거나 기념하는 사업이 봇물 터지듯 펼쳐지고 있다. 전국의 지자체와 민간단체가 ‘박정희 마케팅’에 나서고, 정부 부처도 예산을 적극 지원한다. 10·26사태와 박 전 대통령 생일인 11월 14일을 앞두고 분위기는 더 고조되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 취임 후인 지난 3월부터 본격화된 지자체 사업이 많다. 철원군은 3월 지명위원회를 열어 박 전 대통령이 ‘다시는 나와 같은 불우한 군인이 되지 말자’는 전역사를 남긴 곳인 군탄공원의 명칭을 변경하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같은 달 경북 문경시엔 박 전 대통령의 교사 시절 하숙집인 청운각(靑雲閣) 맞은편에 ‘청운주막’이 들어섰다. 민간 음식점인데도 문경시가 건물 리모델링을 돕고 박 전 대통령이 즐기던 음식을 개발해 ‘대통령국밥, 대통령칼국수’라고 이름을 붙였다.

야당과 시민단체에선 ‘박근혜정부를 의식한 행정’이란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철원군청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전역지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에 마땅한 공원이 없어 예전부터 필요했던 사업”이라고 말했다. 문경시청 농업기술센터 김미자 계장도 “다른 지자체 역시 스토리텔링이 되는 지역 음식점을 개발하려 노력하는데 스토리가 있는 자원을 이용하는 건 지자체의 권리”라고 해명했다.

비슷한 사업에 경쟁적으로 나선 지자체도 있다. 경북 구미시·포항시·청도군이다. 구미시엔 이미 ‘박정희 생가’가, 포항시와 청도군엔 각각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이 있다. 그러나 세 곳의 지자체는 올 들어 사업 규모 확대에 나섰다. 구미시는 ‘박정희 생가 공원’ 인근에 지난 1월 홍보관인 ‘민족중흥관’을 연 데 이어 2015년까지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을 만들 계획이다. 포항시도 2015년까지 기존 시설을 확장한 ‘새마을운동 체험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이르면 10월 중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경북 청도군은 ‘새마을운동 발상지 테마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 재정이 부실한 마당에 유사 사업에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민주당 김현 의원은 “재정자립도가 10%밖에 되지 않는 지자체까지 마구잡이식으로 참여하고 있어 사업 재조정과 예산 축소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자체들은 “다른 지역보다 새마을운동 관련 자료가 많다”(구미시청 장성길 계장), “한국의 경제발전상을 배우려고 포스코를 찾는 외국인들이 들르기에 좋다”(포항시청 주무관), “새마을운동 발상지란 컨셉트가 가장 잘 맞다”(청도군청 장미화 주사)고 주장한다.

경북의 다른 지역도 들썩인다. 경주시에선 올해 한 민간 단체가 ‘박정희공원’을 조성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경주시청 관계자는 “다른 지자체에 비슷한 시설이 있어 경주시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지만 민간 쪽 움직임까지 통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울릉군도 지난 4월 옛 군수 관사를 재정비해 ‘근대문화유산 전시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하룻밤 묵었다는 사실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군청 관계자는 “울릉도에 근대문화 시설이 없어 추진하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지방선거 앞두고 지자체 경쟁 치열
서울 중구청도 280억원을 들여 박 전 대통령이 ‘5·16쿠데타’를 전후로 3년여간 살았던 곳이자 박근혜 대통령이 ‘10·26사태’ 이후 잠시 거주한 신당동 가옥을 ‘박정희기념공원’으로 만들려다 잠정 중단한 상태다. 국비 지원 50%, 서울시 지원 20%, 구청 예산 30%로 계획을 짰지만 국비와 서울시 지원이 불투명해서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국가경제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국민 세금을 들여서 기념공원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서울시에도 예산 지원을 신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서울엔 이미 지난해 2월 상암동에 문을 연 ‘박정희 기념ㆍ도서관’이 있다.

이런 지자체들의 움직임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정희 향수를 겨냥한 개발사업으로 표를 얻으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여권 지지층 일각에선 “박 대통령 재임기간일수록 박 전 대통령 추모 활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의 정광용 회장은 “대선 이후 박사모는 노사모가 실패했던 전철을 밟지 않고 박 대통령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행동을 자제하자고 결의했다”고 말했다. 3공(共) 때 활약했던 인사들의 모임이자 매년 10월 26일 국립현충원에서 열리는 박 전 대통령 추도식을 주관하는 민족중흥회 측은 “박 대통령 취임 첫해라는 이유로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을 학술적으로 재조명하고 새마을운동을 전파하는 사업은 활발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박정희리더십연구원’의 채영택 연구실장은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 있어 국내에서 지자체와 연계하는 활동엔 조심하고 있다. 하지만 저평가돼 있는 새마을운동의 업그레이드 모델을 만들고 이를 세계화하는 데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선데이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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