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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의료업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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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술은 각종 질환으로부터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위대한 직업이지만 돌팔이, 가짜 인술은 오히려 사람의 목숨을 뺏는 흉기가 된다. 이른바 돌팔이 의료업자에게 걸려들면 돈은 그대로 빼앗기가 일쑤이며 병은 병대로 악화되기 마련으로 치료시기를 놓친데다가 흔히 치료비마저 모두 써버린 후여서 현대의학도 무색하게 목숨을 잃는다. 보사부는 내무 법무 등 관계부처와 협조, 해마다 부정의료업자에 대한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치료비가 싼데다가 즉시 병을 고친다』는 명목을 내세운 가짜들이 번성하고 있다.
지난 16일 간경변중(간경변증) 환자로 국립의료원에 빈사상태로 입원한 송모씨(43·영등포구신림2동)의 경우가 돌팔이의 그물에 걸린 좋은 예-. 송씨는 작년 4월 갑자기 소화가 안되고 전신 쇠약같이 나타나자 곧 수도육군병원에서 진단을 받아 간 이상이란 것을 알았다. 송씨는「인텔리」이지만 박봉에 허덕이는 다섯 식구의 가장으로 병원은 엄두를 못 내고 용하다는 소위 의원을 찾아다닌 것이 오늘의 운명을 부른 화근이었다.
송씨는 당장 소화가 안 돼 애를 먹다가 우선 찾아간 것이 영등포구청 뒷골목의 체증을 내리게 해준다는 30대 여인. 여인은 세숫대야 앞에 앉혀 입을 벌리게 한 뒤 손가락을 목구멍안으로 집어넣어 오징어토막 3,4개를 꺼냈다.
여인은 식도에 걸린 오징어 토막을 다 꺼냈다고 했다. 송씨는 그 후 어쩐 일인지 속이 시원하고 입맛도 났다. 이때 송씨는 당산동 K한의원이 용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TV처럼 생긴 환등기 3대 앞에 누워 전기가 통하는「비스키」만한 철판을 어깨와 배에 얹어놓고 진단을 받았다.
환등기에선 알 수 없는「그래프」가 한동안 명멸하고 간과 위가 나쁘니 비방 한약을 먹어야한다는 처방이 내렸다. 한첩에 2백원씩하는 소위「비방」을 두달간 복용했으나 병세는 더욱악화. 송씨는 전주로 부산으로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 다닌 끝에 회복 불가능한 빈사상태로 국립의료원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돌팔이들의 종류는 가지가지. 송씨가 당한 것과 같이 체한 것을 꺼내는 것처럼 하면서 미리 준비한 고깃덩이를 내놓는 사기「체 내림」, 자궁탈출에 대한 황산, 청강수 지짐, 「키니네」에 의한 유산, 치질에의 수은·부식제 주사, 정신병 환자에 대한 안찰기도, 풍(풍) 전문「디스크」에의 침·뜸 등등. 자궁탈출은 다산으로 인해 근육이 풀려 자궁이 빠지는 것으로 오므러들게 한다고 극약으로 지진다는 것은 오히려 화농을 부르는 짓. 「키니네」의 독성으로 아기를 떼는 것이나 안찰기도 등 어느 것이나 심하면 생명을 빼앗는 위험천만한 엉터리 치료행위이다.
국립의료원의 경우 부식제 주사로 항문이 녹아 찾아오는 환자가 한해에 20여명이나 되며 자궁탈출증을 더치게 하여 끝내 자궁을 들어내야하는 시골아낙네도 10여명이나 되는 등 돌팔이의 피해는 막심한 실정.
성모병원장 전종휘박사에 의하면 외래환자의 20%를 차지하는 시골환자가 치료경위 조사결과 거의 대부분이 이같은 돌팔이에 시달리다가 막판에 서울로 왔으며 국립의료원 신경냇과과장 박충서박사도 월평균 1천명의 환자중 50%가 돌팔이에게 속아 치료시기를 놓치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들 돌팔이들은 대부분 한의원 간판이나 병원간판을 버젓이 내걸고있어 일반 환자들은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 17일 서대문경찰서에 잡힌 장승의원(서대문구대현동40의21), 박영종(32)과 정병모(30)가 바로 병원간판을 내건 좋은 예.
둘 다 위생병 출신으로 지난 2월초 나이가 많아 병원을 못하는 이완승씨(61·서대문구녹번동)의 의사면허를 월세 6만원으로 빌어 장승의원을 차린 것.
박과 정은 지난 3일 심한 폣병으로 임신 3개월의 첫 아기를 떼러온 고금희씨(25·서대문구북아현동시민「아파트」)를 낙태수술하며 엉뚱한 대장을 갈라내어 고씨는 자궁화농으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자궁절제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판이다. 이 때문에 고씨는 평생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댔다.
보사부집계에 따르면 작년 1년 동안 모두 2천6백7명의 부정의료업자를 적발, 9백80명을 고발조치, 1백개소를 폐쇄, 7백79명을 훈계, 7백48명을 경고 등의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전국의 의사감시원이 현재 40여명 뿐인데다가 기동력도 없고 감시원의 신분이 모두 임시직이며 돌팔이 등 부정의료업자의 수법이 교활해가고 있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보사부 당국자는 환자의 무지와 빈곤이 돌팔이 횡행의 온상이라고 말하고 가급적이면 병원을 찾아 돌팔이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당부했다. <김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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