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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에 고민하는 연구기관|기관장회의의 건의와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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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12일 중앙청 제1 회의실에서 열렸던 제 4차 전국 기관장회의는 표면상으론 성황을 이뤘다. 백두진 국무총리가 치사를 통해 격려해 주었을 뿐 아니라 일일이 기관장들과 악수를 하며 돌아다닌 것이라든지 제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나타난 연구투자 계획과 과학기술처의 72년도 과학기술개발 시행계획이 의욕적이라는 것 같은 것은 연구기관장들에게 활기를 줄 만한 사례였다. 그러나 과거에 국공립 연구기관장들이 우선은 늘어나는 이직자를 막기 위해 강력하게 건의했던 연구직 공무원법의 제정을 이번에도 또 건의사항의 첫 항목으로 내걸지 않으면 안됐다는 것은 그들의 그전부터의 고민이 여전히 해소 안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71명의 연구기관장을 부문별로 보면 국공립기관 44명, 법인체기관 11명, 대학부설기관 16명이었다. 70년도에 비하면 전체에 있어서 23명이 늘었는데 그 중 법인체에서 9명, 대학부설기관에서 14명이 는 것이 특징. 그러나 작년과 마찬가지로 기업체부설기관에선 1명도 없다는데서 말은 전국연구기관장회의지만 결국은 국공립연구기관장회의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에 과학기술진흥을 위한 연구투자가 우리 나라에서도 점차 증대되어 지난 70년도엔 드디어 1백억 원을 돌파했는데 72년부터 실시되는 3차 5개년 계획에 대한 이날의 회의에서의 설명을 보면 매우 고무적이었다. 72년의 2백13억 원(국민총생산의 0.8%)에서 76년의 3백69억 원(1%)에 이르기까지 총 합계가 1천 4백 36억 원이 되는 것 같은 것은 몇 년 전 만해도 국민 총생산의 0.2∼0.3% 정도였던 사실에 비춰 큰 비약이다.
특히 민간의 연구투자를 증대시켜 72년의 44억 원(전체의 20.8%)에서 76년의 1백47억 원(40.6%)으로 되게 한다는 사실은 중진공업국으로의 지향을 목적으로 하기 위해선 꼭 실현시켜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이러한 계획도 과학기술의 나라인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69년에 이미 연구투자 1조원(일화)을 돌파한 이웃나라 일본에 비해서도 어림없는 수치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 과학기술처가 사전에 각 연구기관들과 연락해서 종합한 72년도 과학기술개발 시행계획지침도 오히려 너무 욕심을 부렸다고 할만큼 각분야에 걸쳐 많은 항목을 내걸었다. 특히 기초과학연구 센터·기계종합시험검사소·영양연구소 등의 설치에 대해선 어떤 조직과 기능을 갖는 것이 되느냐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면서 한편으론 국공립연구기관장들의 오랜 고민이 해소 안 되는 처지에 새로이 몇 사람에게 고민이나 안겨 주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낳게 하고 있다.
사실 이날 오신섭 국립공업연구소장이 대표로 낸 건의에서 제일 먼저 지적했듯이 연구능률제고를 위한 연구환경의 조성 없이는 국공립연구기관의 발전은커녕 도리어 존립이 가름되는 위기마저 맞을 가능성이 있다. 연구환경의 조성을 위한 첫 조건으로 연구공무원법의 시급한 제정을 건의했는데 동법의 제정에 대해선 70년 회의 때도 건의됐었다.
과학기술처는 작년에 건의를 받아들여 그해 4월에 연구공무원법안을 만들어 총무처로 넘겼으나 연구직뿐 아니라 의무직 약무직 기타 여러 전문직 공무원들의 처우문제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보류됐고 다만 임용제도에서 다소 개선된 것으로 밝혀졌다. 국공립연구기관장들로선 연구원의 대우를 좋게 해야 연구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단순한 속셈에서 동법을 제정하라고 건의한 것은 아니다.
그런 법이 안 만들어지면 민간기업체나 딴 연구기관으로 떠나는 이직자를 막을 길이 없기 때문에 마치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하듯 그들의 고민과 초조는 아주 심각한 것이다.
국공립 연구기관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종합연구기관인 원자력청원자력연구소에서 70년에만 13명의 연구직 공무원을 비롯해 58명이 떠났다. 그런데 확보한 연구직 공무원은 단 2명이라는 심각한 실정이다. 딴 국공립연구기관의 사정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끝으로 이번 회의는 이미 네 번째로 접어들어서인지 좀 매너리즘에 빠진 듯 활발한 토의나 명백한 비전 을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을 커버하려는 듯 우수 연구기관에 대한 표창 제도가 새로 얼굴을 내밀었는데 서투른 탓인지 빛이 덜 났다.<이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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