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세계의 한국인|미 보안관 된 서울의 럭비선수|로스앤젤레스=김석성 특파원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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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로스앤젤레스·카운티의 셰리프(주보안관)인 새뮤얼 이씨(37)는 한국계미국인으로서는 유일의 셰리프. 셰리프란 한국의 경찰제도에는 없는 직제이나 굳이 기능을 따지자면 우리 나라의 치안국 직속경찰과 비슷한 일을 한다.
10여년 전 서울한성중학 재학 중에 럭비선수였다는 새뮤얼 이씨는 1백75㎝의 늠름한 키에 콧수염을 기른 건장한 체구의 소유자이다.

<올해로 3년째 근무>
로스앤젤레스에는 1960년 유학차 왔으나, 그 뒤 미 육군에 지원입대, 지원병에게 주는 전출지 희망에 따라 63년부터 1년간 한국의 미8군 참모장 부속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64년 초에는 도미니카로 전출되어 66년에 제대할 때까지 거기서 근무했다.
그가 경찰관으로 투신한 것은 제대한 다음해, 로스앤젤레스경찰학교에 입학한 때였다. 이씨의 말로는 로스앤젤레스·카운티 경찰학교가 미국 내에서는 졸업하기가 셋째로 어려운 직업학교라는 자랑이다.
올해로써 만3년째 보안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씨는 아직 노총각. 올해는 꼭 휴가를 얻어 고국에 가서 신부감을 구해와야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씨가 말하는 미국의 경찰제도는 다양하다. 한국처럼 국립경찰로 단일화되어 있고, 행정구역에 따라 경찰관할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연방경찰로는 잘 알려진 FBI가 있고, 각주에는 주 내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주 경찰, 하이웨이교통의 혼잡이나 인명사고만을 처리하는 하이웨이 순찰경찰, 카운티(군) 마다 있는 보안관, 또 시마다 있는 시 경찰 등 다원적인 체제로 치안이 유지되고 있다.
현재 부 보안관으로 있는 이씨의 월봉은 8백75 달러. 모터·사이클을 타면 위험수당 2백 달러가 추가된다. 보안관의 근무시간은 아침. 낮. 저녁의 3교대의 순환근무이기 때문에 그의 출근시간은 일정치 않다.
『불규칙한 출근시간 때문에 미국에서는 셰리프의 직업이 여자들 사이엔 인기가 없다』 고 이씨는 말하며 장가 못간 이유도 바쁜 보안관 생활 때문이라고 웃는다.
보안관 근무 중 가장 어려운 일은 모터·사이클순찰. 보통 시속 70∼80㎞로 달리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하다. 그리고 관내 순찰에는 노련한 경찰업무가 요구되어 외국인들에겐 감당하기 힘들어 현 로스앤젤레스·카운티에는 이씨가 동양인으로서는 유일한 보안관이라고 했다.

<약방에 감초 격>
몇 년 전만 해도 보안관이 되려면 학력이 고졸이상이고 영국에서처럼 키가 1백80㎝이상이어야 했으나 요즘은 신체적인 조건보다 지적활동이 더 요청되기 때문에 신장의 제한은 훨씬 누그러졌다.
그러나 보안관이 되기까지의 교육은 고역으로 일관돼있다. 범죄학·법률 일반·경찰학·응급치료·경찰실험 등의 교과목은 물론, 아주 급한 산모로부터 갓난아기를 받아내는 응급 분만술, 비눗가루를 흐트려 물을 뿌려 논 보도 위를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긴급 정거하는 방법 등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질서유지에 관계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배운다. 경찰의 훈련은 실로 완벽하다.
미국의 거리에서는 정복 경찰관을 구경하려해도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불과 10m간격마다 거리에 경찰이 서있는 서울거리와는 퍽 대조적이다. 그러나 일단 범죄가 발생하면 어느 틈에 경찰관이 달려와 서있다.
그래서 미국시민은 걸핏하면 경찰을 부른다. 『이웃노인이 심장마비에 걸린 것 같다』고 수다를 떠는 할머니의 신고, 고양이의 행방불명으로 빚은 부부싸움신고, 아니면『퇴근이 늦은 남편의 차가 지금 어디쯤 있느냐』고 물어오는 알뜰한 부인의 조바심 등 자질구레한 신고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한마디의 불평 없이 신고를 처리하는 것이 경찰의 태도라고 한다.
이씨의 말에 따르면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신고는 역시 부부싸움. 작년여름 트레일러·하우스 촌의 신고로 현장에 급히 가 봤더니 1백㎏ 가까운 뚱뚱보 마나님이 남편이 세금신고를 정확히 자기에게 밝히지 않는다고 닦아세우고 있더라는 것.

<마리화나 적발에 수훈>
순찰 중 귀찮은 일은 선세트·스트립과 벨플라워 거리 쪽에 밤이면 아무 할 일 없이 우글거리는 히피족들을 지켜보는 것도 그 하나다. 이씨의 지금까지의 보안관 생활 중 가장 자랑할 만한 일은 작년9월 할리우드거리에서 그의 3인조 잠복조가 마리화나, MTD, LSD등 마약 1만 달러 어치를 거래하는 현장을 덮쳐 6명을 검거한 일로,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도 크게 보도되었다고 한다.
올해는 꼭 고국에 가보고 싶다고 거듭 말하는 이씨에겐 서울에 두 동생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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