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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새 유권자의 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선거권을 갖게된 유권자(만20세∼23세)는 약2백70만명이다.
이들은 해방은 물론 6·25를 책 속에서 알고 있는 전후세대이며 자유당 적인 정치풍토나 민주당시절의 정치기상에 부딪쳐보지 못한 정치적 새 세대이다.
20대는 흔히 기존질서에 반항을 느끼는 반체제적 의식경향을 갖는다. 상대적인 비판보다는 이상주의적인 독단에 빠지기도 쉽다.
이들의 눈에는 이번 선거가 어떻게 비치고 있는 것일까. 자유당과 민주당의 질서를 모르고 공화당의 질서만을 감각해온 이들은 처음으로 선거권을 행사하는 새 세대이면서 또 앞으로의 정치질서를 담당할 추진세대이기도 하다.『나의 한 표가 특정인의 당락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새로이 선거권을 갖는다는 것이 대견스러울 것 없다. 그러나 선거권을 행사함으로써 떳떳이 비판할 수 있고 또 정치에 관해 얘기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듯이 생각되어 기꺼이 투표권을 행사하겠다』-. Y대학 임동석(20)군의 얘기다. 면밀한 참정의식이다. 그는 선거 때만이 아니라 선거가 끝난 후에도 계속 유권자로서의 참여를 기대했으며 또 『유권자로서의 대접을 계속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선거 때마다 바람이 이는 「선심」이나 「막걸리」는 새 유권자의 눈에 이해될 수 없는 것. 회사원 정경숙양(22)은 『정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선거 때가 되면 타락선거니 부정선거니 하는 얘기가 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 그런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투표하는 사람과 표를 받는 사람의 사이는 4년 동안 공백이었다가 선거 때만 갑자기 가까워지자니까 돈이 드는 게 아니겠느냐』면서 그런 투표권이라면 자랑스럽지 못하다고 했다. 선거의 타락을 치자와 피치자의 거리에서 뽑아내고 자신이 갖게된 투표권의 가치를 거기서 산출하는 것 같다.
이발사로 일하는 박수일씨(23)는『선거에 관심은 있으나 뾰족하게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인지, 내가 새로이 투표권을 갖게 됐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보지 못했다』고 했다. 또 하나의 정치적 무관심이다.
아마 이런 무관심이 20대의 기권율을 높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67년 대통령선거에서 평균기권율은 16.4%인데 20대의 기권율은 18.8%로서 최고연령인 60대 이상을 빼놓으면 어느 연령층보다 기권율이 높다.
그래도 권리의식은 비교적 높은 것 같다. 더우기 부정선거론 때문에 그것이 자극 받은 면도 있는 것 같다. 무역회사원인 정기영씨(23)는 『우리도 20년 이상 민주주의라는 걸 했으니까 최소한 선거에서의 잡음은 없어야하는데 벌써부터 여·야당에서 나오는 소리는 명랑치 못합니다. 나는 어떤 소리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표가 있다는 것을 실증하기 위해 투표를 해 볼 작정입니다.』라고 했다.
여·야당의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거의가 비판적이다. K대학 4학년의 이영배군(22)은 『정권획득을 하는 정당이 4년 내내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며 선거가 임박했다고 해서 시비를 서로 걸어 시끄럽게 하는 것은 좀 유치한 것 같다』고 기성정치인들을 비판했다. 투표권의 행사는 4년 동안 보아온 바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지 새삼스럽게 선거 때라고 해서 결정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확고한 태도다.
선택은 정당위주냐, 인물위주냐에 대해 정당위주라야 한다는 사람이 많다. 단지 대통령선거에 있어서는 특정후보의 퍼서낼리티나 경력 등을 중시하는 경향이다.
건축기사로 일하고 있는 박형식씨(23)는 『지도자 한사람의 힘은 곳곳에 미치기 때문에 대통령선거에서는 인물중심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선택판단에 있어서는 개인 한사람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주변과 그가 속한 정당의 풍토도 고려돼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새 유권자들은 또 정치에 관한 지식을 거의 신문이나 TV등 매스컴에서 얻고 있지만 언론이 여·야의 주장을 무기물 적으로 보도할 뿐, 판단의 자료를 제공치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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