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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이변… 금 값 하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금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결혼·졸업·입학등성수기룰 맞아 예년 같으면 지금쯤 금의 거래가 활발해지고 따라서 값도 오를 때인데 이례적으로 금년에는 금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내드 예년에 비해 한산한 편이다.
시내 J 금은상의 경우 금값은 작년 이맘때(g당 9백원)보다 11%가 떨어진 g당 8백원에 산매하고 있으나 거래량은 작년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대신에 퇴장해 두었던 고물전을 팔러오는 사람의 수는 작년 이맘때 보다 몇 배나 되고-.
우리나라의 연간 금류 통량은 약 8t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광산에서 새로 생산해 내는 금은 2t뿐이고 나머지6t을 일반 시민이 퇴장했던 금을 다시 시장에 내놓은 것(5t)과 밀수금(1t)으로 충당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금값 추세를 보면 45년의 해방이후 66년까지는 물가상승율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67년에 와서 금값은 물가상승율을 훨씬 앞질러 1년 동안에 일약 70% 이상이 뛰어 올랐다. 이 것이 67년의 금값파동이며 이후 금값은 70년6월까지 계속 물가를 앞질러왔다.
45년 이후의 금값과 물가상승률을 비교해보면 물가는 해방당시에 비해 현재 약4천5백10배가 올랐으며 금값은 약4천8백10배가 올라 거의 비슷한 추세로 나타나고있으나 금값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보다 7 「포인트」정도 앞서고 있다.
해방 당시의 금값(도매)은 돈쭝당(3.75g47전(현행 「원」기준·당시 화폐가로는4백73원)인데 71년1월말 현재의 금값은 돈쭝당 2천4백4원이다.
따라서 해방당시에 금1g을 판돈이 지니는 구매력과 2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금1g을 판 돈이 갖는 구매력에는 거의 변동이 없는 셈이 된다.
즉 25년이란 오랜 세월동안에 김의 실질적인 구매력은 거의 늘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해방 당시에 산 금을 67년도에 처분했다면 그 사람은 22년 동안의 물가상승을 고려하고도 50%의 덕을 보았을 것이다.
한편 65년에 금을 사 가지고 67년에 이를 처분한 사람의 경우도 2년 사이에 금값이 1.7배로 뛰었기 때문에 그 동안의 물가상승률 17%를 고려하더라도 약41%의 이를 본 셈이 된다.
그러나 69년에 금을 사두었다가 지금 시장에 내다 팔려는 사람은 그동안 물가가 14%올랐지만 금값은 반대로 15%가 하락한 만큼 실제로는 25%의 손해를 보게된다. 이로 미루어 금을 사두는 것은 「인플레」에 맞서 가치를 현상 유지하는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가치를 증식하는 수단이 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의 금값을 좌우하는 것은 퇴장된 금(고물 금)이고 다음은 밀수 금이다. 퇴장된 금이 일시에 많이 쏟아져 나오면 금값이 떨어지고 또 밀수금의 유입량이 늘어나·면 금값은 다소 하락세를 보인다.
따라서 지금까지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가정에서 퇴장 금을 시중에 내어놓는 1월에 금값이 떨어졌으며 결혼 「시즌」인 봄과 가을에는 수요가 늘어나 값도 정소에 비해 다소 오르는 경향이었다.
이러한 금값이 지난 67년이래 급격히 오른 것은 일반이 가지고있던 금을 시장에 내어놓는 량이 줄어든 데다 부정 「루트」를 통해 유입되던 금이 당국의 단속강화로 줄어든데 원인이 있다고 분석되고 있다.
그밖에 국내에서 생산하는 금의 원가가 비싸게 먹히는 것도 금값 앙등의원인의 하나로 지목된다.
그런데 정부는 금값이g당 9백원(산매) 선을 넘어서자, 작년 7월에 금 거래 규제법을 마련, 순금의 유통을 막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러한 방침이 밝혀진 후 금의 유통량은 크게 줄어들었으며 값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 광업 제련공사는 g당 6백41원씩에 금24㎏을 공매했다. 이는 작년 6월의 8백원선보다 1백60원(20%) 이나 떨어진 시세다.
그러나 금값이 계속 떨어진 지금도 우리나라의 금값은 국제시세 g당 4백원에 비하면 아직도 월등히 비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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