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좋은 세상」이라는 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아폴로 14호 중계 방송을 온 가족이 보고 있었다. 2차 월면 활동 작업이 끝나고 기체 속으로 이것저것 물건을 챙겨가며 우주인들은 나사 본부와 『다 되었나.』『오케이…』등 이층과 아래층 사람 얘기하듯 여유 만만한 대화를 나눈다.
이때 TV를 보시던 어머님께서 『어어…저거 하나는 두고 가네…』하신다. 나는 어머님께 『그래요. 저거 빠뜨려 놓고 가는 모양인데 어머님이 가서 주워 오세요』라고 농담으로 받아 넘겼다.
어머님은 혼잣말처럼 『참 요즈음 사람들은 좋은 세상에 살지』하시는데, 난 문뜩 어머님의 20대 시절이 그리워졌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에는 새삼스럽게 탄복하지만 그 지혜와 능력에 반비례로 상승하는 또 하나의 부작용들 때문에….
며칠전 일이다. 오후에 시내에 나가 육교를 올라가는데, 청년 두명이 술 냄새를 풍기고 비틀거리며 내 팔을 확 잡는다. 졸지에 너무 놀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다행히 옆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 자리를 떠나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머니들께선 우리를 보고 좋은 세상에 산다고 하시는데, 나는 그 시절이 더 좋지 않았나 싶다. 어머니가 젊으셨던 시절에는 이렇게 길에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겠고 온종일 대문을 잠가 두지도 않았을 게고, 이웃끼리 다정스러운 인사를 주고받았겠지만…지금은 대문을 벗어나면 불안 의식이 앞선다. 먼지와 소음, 자동차 자체에 대한 사고의 불안, 옆 사람에 대한 불안, 온갖 피해 망상증에….
아폴로 14로 달을 밟고 있는 인간! 또 그것을 아랫목에 앉아 볼 수 있는 TV도 좋지만, 옛날 어머니의 젊은 시절처럼 평온을 피부로 느껴보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우리 세대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안타깝기만 하다.<김윤희(마포구 서교동 336의6)>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