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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징궈 좌우명 인용한 시진핑 … 양안훈풍 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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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대중 강연이나 연설에서 중국 고전이나 시가의 구절을 자주 인용한다. 특히 외국 방문에서 그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지나치게 직설적인 표현을 금기로 삼는 외교적 화법으로 중국 시가나 고전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이번에는 장징궈(蔣經國·1901~1988·사진) 전 대만 총통의 좌우명을 인용한 연설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이 양안(중국-대만) 관계에 새로운 획기적 정책을 마련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은 대만과 가장 가깝고 경제 교류도 가장 활발한 푸젠(福建)성에서 17년 동안 근무하면서 장래 중국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장징궈는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蔣介石)의 아들이고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은 국공내전 때 장제스의 국민당과 맞서 싸웠지만, 시 주석은 그런 내력쯤이야 개의치 않는다는 자세를 보인 것이다.

 중국 전문 뉴스 사이트 둬웨이(多維)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 3일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국회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손을 잡고 중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운명공동체를 건설하자’는 제목의 연설에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사회제도와 발전의 길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 뒤 “이익을 따지려면 천하에 이익이 될 것인지를 따져야 마땅하다(計利當計天下利)”는 문구를 인용했다. 이어 중국의 발전이 아세안에도 이익이 되며 2020년에는 아세안과 중국의 무역총액이 1조 달러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중국의 발전이 곧 아세안을 포함한 천하의 이익이 됨을 넌지시 강조한 것이다.

 시 주석의 인용구는 “명예를 추구하려면 마땅히 후대에 길이 남을 명예를 추구해야 한다”(求名應求萬世名)는 부분과 대구를 이루는 구절이다. 최초의 출전은 분명하지 않지만 중국인들에겐 널리 알려진 글이다. 특히 대만 국민당 원로인 위유런(于右任)이 1948년 대만 총통 선거 기간 장징궈에게 써 준 뒤, 장징궈는 늘 이 글씨를 벽에 걸어 두고 좌우명으로 삼았다. 중국-대만 관계가 꽉 막혀 있던 1982년 당시 중국의 전인대 부위원장 랴오청즈(廖承志)가 대만의 총통이 된 어린 시절 친구 장징궈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이 문구가 인용됐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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