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남덕현의 귀촌일기

귀농? 귀촌? 생태주의자였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남덕현

“귀농? 귀촌? 생태주의자였어?” “나 시골로 이사 가”라고 말하면 지인들의 반응은 이처럼 한결같았다.

 “아니! 그냥 시골에서 살고 싶어서.” 필자의 대답 역시 한결같았고, 지인들은 대부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설득력 있는 의미와 원대한 계획이 있는 줄 알았는데 단지 ‘그냥’이라니!

 적지 않은 나이에 알량하나마 전 재산이었던 손바닥만 한 아파트를 처분해서 내려가는 마당에 너무 한가로운 생각이 아니냐는 질타가 뒤따랐다. 필자 역시 시골에 집을 짓고 살겠다는 결심을 굳힌 순간부터 정착의 의미를 찾으려 애를 썼다. 물론 시골이 좋다는 확신은 분명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것이 상수(常數)가 될 수 없었다. 도서관에서 귀농·귀촌 글자가 들어간 책들을 닥치는 대로 빌려 읽었고 관련 정보를 샅샅이 뒤졌다. 정보가 쌓여가는 만큼 미지수와 변수도 늘어갔다. 공사 날짜는 다가오는데 마음고생이 심했다.

 견디다 못해 어둠 속을 달려와 지금의 집터에 홀로 섰을 때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밤안개는 머릿속 가득 찬 ‘의미’처럼 혼돈을 품은 채 자욱했고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숲 생명들의 웅성거림은 변수와 미지수처럼 두렵기만 했다. 소득 없이 돌아서려는 그 때 거짓말처럼 짙은 안개를 뚫고 설핏 달빛이 비추는가 싶더니 찔레향기가 코를 찔렀다. 나도 모르게 깊은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 쉬었고, 그때마다 몸속의 휘발 물질이 시원하게 빠져나감을 느꼈다. 산도르마라이의 표현대로 ‘신마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간절한 기도가 ‘그냥’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 경건함과 충만한 기쁨이라니!

 필자는 비로소 상수와 미지수와 변수가 뒤바뀐 시골살이 방정식을 엉터리로 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수라 여겼던 ‘의미’는 사실 미지수와 변수였고, 내가 시골이라는 시간과 공간에 있을 때 더할 나위 없는 경건함과 행복으로 충만할 수 있다는 감정적 확신이야말로 상수였던 것이다. 그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시골에서 뭐 하고 사느냐”였다. 필자의 대답은 한결같다. “시골에서 그냥 살지 뭐!” 물론 그냥 살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의미를 찾기보다는 자연이 무심코 던져주는 벅찬 감정들을 받아내기에 급급해하며 살 따름이다.

남덕현

◆약력=1966년 대전 출생. 서강대 사회학과 졸. 2007년 서울살이 22년을 뒤로 하고 처가가 있는 충남 보령시 외곽 달밭골로 귀촌. 장류·젓갈을 만들며 농사도 짓고 있다. 자이랑식품 전무, 자이랑 숲 연구소장. 저서 『충청도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