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인생은 엉덩이 승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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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호 30면

인생은 엉덩이이다. 이 말은 정확하지 않다. 나는 인생과 엉덩이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파스칼 키냐르가 쓰고 류재화 선생이 번역한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들이 이러는 동안 음악가는 오두막에 틀어박혀 제노바산 낡은 벨벳 천 조각을 씌운 앉은뱅이 의자 위에서 엉덩이가 닳도록 시간을 보냈다. 생트 콜롱보는 이곳을 자신의 ‘보르드’라고 불렀다. 보르드는 버드나무 아래 물이 흐르는 축축한 가장자리를 가리키는 옛말이다. 뽕나무 위에서, 버드나무를 앞에 둔 채,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입술을 꽉 다물고, 상체는 악기에 숙이고, 손은 금속 지판 위에서 노닐며 숱한 연습을 통해 실기에 완벽을 기했다. 선율이, 혹은 탄식이 그의 손가락 아래에서 흘러나왔다.”

이 소설은 실존했던 비올라 다 감바의 거장 생트 콜롱보의 예술과 삶을 그린 작품인데, 문장이 고요하고 아득해서 한 문단을 채 읽기도 전에 선율이, 혹은 탄식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감탄했던 것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그러니까 생트 콜롱보는 자신의 ‘보르드’에 틀어박혀 제노바산 낡은 벨벳 천 조각을 씌운 앉은뱅이 의자 위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의자의 벨벳 천 조각이 아니라 ‘엉덩이’가 닳도록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키냐르의 소설을 읽고 있으니 고등학교 때 수학선생님이 떠오른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했다. 조금 과장하면 내 석차가 우리 반 전체 숫자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수학시간이었다. 어쩐 일인지 화난 얼굴로 선생님이 말했다.

“수학시험 빵점,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주관식 시험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객관식 문제인데도 빵점 받는 녀석은 뭐냐. 대충 찍어도 확률상 4분의 1은 맞힐 거 아니냐. 부산시에서 딱 한 명이야. 그 한 명이 이 반에 있어요. 어떻게 답을 다 피해 갈 수 있는지 그것도 참 대단한 재주다. 아주 천재야, 천재.”

선생님은 혀를 찼고 아이들은 와르르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는 내 앞에 선생님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다른 놈들은 다 웃어도 너는 웃으면 안 돼.”

나는 눈치도 없고 둔한 학생이라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 봐야 했다.

“왜 저는 웃으면 안 됩니까?”

“그 한 명이 바로 너야.”

하루는 야간자습 시간에 복도에서 돌아다니던 나를 선생님이 불렀다.

“상득아, 네가 왜 공부를 못하는지 아느냐?”

“예, 머리가 나빠서입니다.”

“잘 아는구나. 너는 머리가 나쁘지. 그런데 더 나쁜 것은 네 엉덩이야. 너는 엉덩이가 너무 가벼워. 공부는 머리보다 엉덩이로 하는 거거든. 공부뿐 아니라 앞으로 네가 뭘 하더라도 마찬가지야. 머리보다 엉덩이를 많이 쓰는 사람이 되거라. 인생은 결국 엉덩이 승부란다.”

그때 나는 선생님 말씀을 귓등은커녕 엉덩이로도 듣지 않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생은 엉덩이 승부라는 것을. 내 인생이 이처럼 가벼운 것은 결국 가벼운 내 엉덩이 때문이라는 것을.

어깨너비만큼 다리를 벌린다. 배를 안쪽으로 당긴다. 허리를 아치 형태로 만든다.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발뒤꿈치로 바닥을 누르며 엉덩이를 들어올린다. 그렇다. 나는 엉덩이 근육을 기르는 데 좋다는 스쿼트를 하는 중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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