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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공약 깨기 말 바꾸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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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호 29면

“내 입술을 읽어보세요. 절대 새로운 세금은 없습니다.”

1988년 8월 18일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된 조지 HW 부시의 수락 연설은 이 부분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더 이상 새로운 세금은 없다’는 말은 당시 부시의 핵심 공약이자 선거 구호가 됐다. 이 공약은 제41대 대통령에 부시가 당선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부시는 대통령 취임 뒤 이 공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연방 예산적자 때문이었다.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를 장악하고 90년 예산안 합의 조건으로 재정적자 감축을 요구하자 부시는 결국 세금 인상에 동의했다. 이 공약은 92년 재선에 나선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부터 이 문제로 난타를 당했다. 대선전에서 그와 맞선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는 이를 집중 공략했다.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선거구호로 표심을 사로잡았다. 결국 90~91년 걸프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재선에 실패했다.

그의 아들인 조지 W 부시는 2000년 대선전에서 세금을 올리지 않고도 사회보장을 강화하고 균형재정을 유지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선거전 막판에 균형재정은 포기했다. 지킬 수 없는 공약으로 나중에 뒷다리를 잡힌 아버지의 실패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는 군대를 국가정체성 강화에 동원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지만 9·11테러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며 이를 없었던 일로 했다. 하지만 따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을 이끈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40년 대선 때 ‘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이를 폐기했다. 그는 공습 다음날 상·하 양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진주만이 폭격당한 날은 “오명의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국민과 의회를 설득했다. 이 바람에 42년 중간선거에서 일부 지지층이 이탈했지만 44년 대선에서 다시 승리했다. 상황 변화는 언제나 있는 법이다. 이를 국민과 정치 파트너에 진심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면 상대방도 받아들인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루스벨트 밑에서 41~45년 부통령을 지낸 헨리 월리스는 자신의 잘못된 정치적 견해를 나중에 수정하고 사과했을뿐더러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사례다. 월리스는 지나치게 소련에 동정적이라는 이유로 44년 대선을 앞두고 부통령 후보에서 탈락했다. 만일 부통령에 재선됐다면 45년 4월 12일 별세한 루스벨트를 승계해 대통령직에 올랐을 거다. 월리스는 47년 소련 강제노동수용소 생존자인 세르게이 페트로프를 만나 참혹한 실상을 듣고 나선 자신의 친소(親蘇) 행보를 사과했다. 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땐 참전 지지 활동을 폈다. 52년엔 『나는 어디에서 틀렸나』라는 책을 펴내 자신이 소련 선전에 속아 이오시프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그러면서 반공주의자가 됐음을 천명했다. 반공투사가 된 그는 60년 대선 때 공화당 리처드 닉슨 후보를 지지했음에도 61년 민주당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았다. 케네디가 국가 원로 자격으로 그를 모신 것이다. 정치인은 공약이든 정치적 입장이든 잘못이 있으면 제때 고쳐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게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한국 정치라고 다르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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