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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문명의 오염 속에 섹스 문화 만개|김찬삼 여행기 미국을 지나면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자메이카 섬의 여행을 끝내고 콜룸부스의 최초의 발견지 산살바도르섬에 가려고 했으나 여정이 여의치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국으로 향했다. 자메이카를 떠난 여객기가 쿠바의 상공을 날 때 이 나라의 지도를 펼치고 보니 그려진 항공 코스대로 지나가는 것이 희한하게 느껴진다.
비행 고도는 2천m지만 전망이 좋은 조종실에 들어가 조종사의 설명을 들으며 내려다보노라니 오감도처럼 기막힌 풍경화가 없어 보인다. 이상의 오감도의 역설이 문득 생각난다. 산호초에 흰 물결이 부딪치는 바닷가엔 야자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섬 둘레의 환상 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으나 단거리 항공이 발달한 듯 단거리 비행장들이 보인다. 끝이 없는 하얀 사탕수수 밭이며 담배 밭이 펼쳐지는데 한때 소련의 유도탄 기지 철수 사건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그지없이 평화스러워 보인다.
설령 지상에서 전쟁을 하더라도 높은 하늘에서 보면 한낱 아름다운 전쟁화로 보일테니 신은 인간의 비극이란 아랑곳 없이 파스칼의 말처럼 영원히 침묵하며 이렇게 황홀하게 내려다만 볼수도 있지 않은가.
미국의 마이애미 공항에 내리니 카리브해 쪽에서 오는 여객기로는 밀수 따위를 하기 때문인지 비행기가 멎기가 무섭게 이동식 터널이 통로를 비행기 입구에 댄다. 이것은 여객들의 조사를 철저히 하기 위해서인데 이 통로를 거치는 동안 조사를 받게된다. 이 터널 통로는 사고를 막기 위하여 방탄 장치가 되어 있는가 하면 문이란 문은 모두 갑문식이랄까, 자동식 개폐 장치로 되어 있다.
이렇게 긴장되어 있기 때문인지 조사를 담당한 여자 관리들까지도 거칠어 보였다. 입국 신고서엔 멀티플라이라고 되어 있으며 4년 동안의 체류 기간을 정해 준다.
10여년 전에 들렀던 곳인데 그전엔 보지 못했던 큰 공장이 건설되어 번영을 이루고 있으며 해수욕장에는 국부에 반창고를 붙인 것과도 같은 초 비키니 수영복을 걸친 미인들이 쏘다닌다. 그러나 이 마이애미의 황혼은 초 현대와는 달리 고대의 이미지를 풍긴다. 최첨단을 가는 인간의 유행과 영겁의 우주 미는 불협화음과도 같은 또 하나의 대조가 아닐까.
그런데 마이애미는 세계 미인 대회의 고장으로도 유명하지만 그것보다는 최대의 관광으로서 흥청거리는 것은 케네디 우주항공국이다. 그 사이에 마이애미는 자연에서 인위의 관광지로 바뀐 것이다.
마이애미에서 그레이 하운드 (사냥개) 버스로 워싱턴까지 달리는 동안 그 전에 보지 못했던 주유소가 많이 보이는데 이는 교통량이 폭주한 까닭이리라. 흑인의 숫자가 부쩍 는 듯 전엔 남부 지방에선 흑인의 차별이 있었으나 이젠 흑인들이 위풍 당당하게 활보한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는 백인은 흑인 옆에 안 앉지만 흑인은 백인 옆에 버젓이 앉는데 백인들은 예의가 바르지만 흑인은 금주 규칙을 무시하고 버스에서 술을 마시며 주정을 하는 것은 아쉬웠다. 마이애미에서 밤새도록 달려 26시간만에 수도 워싱턴에 이르렀는데 18세기 후반의 프랑스의 건축가 「피에르·랑판」이 설계한 이 정치 도시는 프랑스식 건축들이 여전히 우아하고도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놀랍게도 백악관에서 그리 멀지않은 시내에는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음탕한 춘화도들, 특히 리얼한 천연색 성 사진들을 공공연히 팔고 있다.
점잖아야 할 이런 도시에까지 그릇된 에로티시즘 선풍이 휩쓸고 있으니 미국은 송두리째 섹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성들을 위한 남자 누드 사진도 많은데 여자 누드 사진과의 비율이 2대3이라고 하니 여자 사진 못지 않게 잘 팔리는 셈이다.
게다가 오르가슴의 기성까지 들리게 하는 성 영화를 상영하는데 이렇게 되고 보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이젠 하잘 것 없는 유물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남녀들의 성기를 만들어 팔기도 하니 이들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섹스의 최대의 쾌락을 누리는 셈이다.
성이란 창조자에 있어서는 생식을 위한 방법이지만 인간에게는 목적으로 되다시피 한 것은 그 이상의 쾌락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세계를 다스린다는 성스러운 도읍인 워싱턴에서까지 이렇듯 그릇된 섹스가 범람하고 있으니 웬일일까. 특히 토인비는 서구가 몰락한 뒤 새로운 문화사를 창조하는 새로운 세력은 미국과 소련이라고 했지만 미국 문명의 위기를 논 할 때가 왔다고 하는 것은 나만의 기우는 아닐 것이다.
※다음은 아이슬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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