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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주인」다시 맞는 「케산」|신상갑 주월 특파원 재탈환 작전 종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본사 주월 특파원 신상갑 기자는 미월 연합군의 케산 기지 재탈환 작전에 한국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군과의 동항을 허락 받았다. 다음은 신 특파원이 미군 수송기 편으로 「케산」까지 종군, 현지에서 보내온 것이다.

<편집자 주>
마치 다시는 안 돌아올 듯 버리고 떠난 미군들을 다시 맞는 옛 격전지 「케산」은 적의 저항이 없는 무표정 속에 미월군을 맞아 들였다.
한국의 늦겨울과 비슷한 쌀쌀한 날씨인데도 긴급 출동으로 야전 잠바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미군 병사들은 열대 정글 차림에 어깨를 움츠렸다.
짙은 안개와 간간이 내리는 찬비, 눈 아래로 흘러가는 구름들은 가뜩이나 음산한 이곳 라오스 접경 지대의 모습을 한층 더 쓸쓸히 보이게 했다.
기자가 미군 C-130 수송기 편으로 이곳 비행장에 내린 것은 7일 하오 4시.
아직까지 이렇다 할 전투는 겪지 않고 있지만 미군들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긴장감조차 들어 보였다. 약 3만명의 미월군은 월남 북부 「콩트리」성과 「투아티엔」성으로 진공, 라오스 국경 지대에 집결한 월맹군을 소탕한 후 며칠 전에 「케산」지구에 들어왔다.
68년 약 2만명의 월맹군이 「케산」근처의 고지를 점령하고 미 해병 연대를 로키트 포와 박격포 및 탱크와 야포로 맹공해 「케산」전투는 국제적인 관심의 촛점이 되었던 곳.
이번 「듀이·캐년」작전은 호지명 루트를 따라 라오스로부터 북부 월남으로 침투하는 월맹의 병원과 물자 침투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이 작전의 승패가 앞으로의 주월미군 철수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보고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케산」에 발을 들여놓은 군인들은 가벼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 중엔 군인이란 자기 의무를 할뿐이라는 담담한 표정을 짓는 병사도 있어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었다.
「애리조나」주에서 왔다는 「러셀·스미드」흑인 1등병은 기자를 보고 자기는 이곳에 온 것이 기쁘다면서 공산 측의 보급로의 목덜미를 꽉 죔으로써 빨리 집에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말했다.
「케산」에 투입된 군인들은 미월군 할 것 없이 적의 저항이 보잘 것 없는데 놀라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찰즈·에드워드」란 한 미군 중위는 68년에도 처음에는 조용했으나 4일째부터 월맹 측 공격이 심하게 퍼부어졌다면서 부하 사병에게 방심하지 말도록 당부했다.
미군과 함께 이번 작전에 참가한 하노이에서 피난 온 월남 사병은 자기는 「케산」에 처음 왔지만 「듀이·캐년」작전이 성공하기를 마음속으로 빈다고 프랑스 발음이 짙은 영어로 말했다.
밤을 새워가며 구멍이 뻐끔뻐끔 뚫린 비행장 활주로를 손질하는 미군이나 여우의 잠자리로 바뀌어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참호를 보수하는 작달막한 월남 군인의 손길은 분초를 다투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작업을 더하여 있을지 모를 적의 산발적인 공격에 대비하려고 캄캄한 새벽에 식사를 서두르는 분대장. 그의 얼굴에는 3년전 「케산」기지에서 땅 밑으로 두더지처럼 굴을 파 들어오던 지독한 공산군과 격전한 악몽의 어두운 그림자가 서려있는 듯 했다.
「랑베이」서쪽의 라오스 국경에는 『미군은 이 지역을 넘지 못함』이라는 경고 판이 여봐라는 듯 본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이 팻말 바로 부근까지 미월군을 수송하는 헬리콥터와 요란한 프러펠러 소리 속에서 기자는 보슬비를 촉촉이 맞으며 이 기지에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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