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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놓인 「터키」정국|악화된 경제사정과 반정부 「무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 1월 24일 밤 「앙카라」대학 「캠퍼스」에서 빚어진 경찰과 「데모」학생들간의 유혈 충돌은 학생 「데모」와 경제사정 악화로 가뜩이나 불안에 쌓인 「터키」정국을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이날 밤 충돌에서 경찰관 6명, 학생 16명이 부상하고 경찰은 학생기숙사에 숨겨 둔 「다이너마이트」와 폭발물 상자를 압수하여 표면적으로는 모든 사태가 일단 수습되는 듯 했으나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한 채 사태는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69년 10월 실시된 총선에서 하원의석 4백50석 중 2백57석을 획득, 65년에 이어 계속 정권을 장악하게 된 「술레이만·데미렐」수상의 정의당 내각은 비교적 온건하고 중도적인 정권으로 농민들과 도시 실업가들의 지지 받아 왔다.
65년 총선에서 집권한 이래 친서방적 외교노선을 걸어온 「데미렐」수상은 미국의 원조와 소련의 차관으로 상당한 경제발전을 이룩했으며 근대 「터키」건국 이래의 극히 안정된 정국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69년 초부터 학제개편과 교육자치를 내걸고 야기된 학생들의 「데모」로 사회질서는 파괴되고 정국이 점차 혼란 속으로 휘말려 들기 시작했다.
특히 68년부터 계속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이러한 사회질서의 혼란과 정국불안정으로 그 소기의 목표를 달성치 못하고 최근 6개월간 달걀 값이 50%나 뛰는 등 심각한 경제난마저 야기됐다.
이러한 경제사저의 악화는 노동자들의 폭동을 야기시켜 작년 6월에는 「이스탄불」에서 「데모」를 벌이던 노동자 3명이 희생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되기도 했으며 전국노동조합들은 정부가 노동자의 이익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난, 들먹이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데미렐」내각은 3개의 종합대학과 몇 개의 사립대학을 폐쇄하는 한편「데모」를 규제하고 극렬 행동과 학원난동을 금지시키는 새로운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 제안도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 야당의 반대로 쉽사리 통과될 것 같지 않다.
「이스메트·이노누」전 수상이 이끄는 야당인 공화인민당은 현행법만으로도 「데모」방지는 충분하며 사태수습의 길은 오직 「데미렐」수상이 사임하는 것뿐이라고 주장, 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해왔다.
여기에 덧붙여 최근 「데미렐」수상의 두 형제들이 1백30만「달러」의 정부융자를 받아 낸 사건은 궁지에 몰린 「데미렐」수상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다.
비록 이 『특혜융자』에 「데미렐」수상이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이들이 수상의 「백·업」을 받았다는 인상이 짙어 「데미렐」수상에게는 치명타를 안긴 셈.
이 사건으로 「데미렐」수상의 인기는 폭락하고 그가 영도하는 정의당에 대한 국민의 신임마저 줄어들게 됐다.
이제 「데미렐」내각이 발붙일 땅이 자꾸만 좁아져 가고있는 실정이다.
학생·노동자·야당·일부지식층 등 모두가 현 정권에 반기를 들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는 반정부 「데모」가 반미로 확대되어 미대사관 직원이 피습 당하는 등 사태는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더욱이 69년의 총선에서 거둔 2백57석의 압도적 승리로 집권 2년 동안에 단행된 몇 차례의 수술 끝에 이제는 과반수조차 되지 않는 2백25석으로 줄어들어 의회의 지지조차 불안한 상태.
다행히 아직까지는 군부가 사태에 개입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데미렐」수상이 새로운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는데 성공하고 대학교수들의 협조를 얻어 학원소요를 진압할 수 있다면 사태수습의 길이 절망적인 것만도 아니다.
얼마 전 「데미렐」수상은 야당의 사임요구에 대해 『국민의 의사에 의해 선출된 나는 국민의 의사에 따라서만 행동할 뿐』이라고 말함으로써 가볍게 일축하고 말았다.
과연 그가 어떻게 이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헌정질서를 수호할 수 있을는지는 미지수이지만 만약 그가 이에 실패한다면 또다시 군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1960년의 『불행』을 되풀이하게 될 공산이 점차 커져가고 있다는 관측이다.<고흥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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