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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불가능하다던 이지원 정치 문건 등 100건 지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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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2008년 봉하마을로 유출됐다가 회수된 청와대 전산관리시스템 ‘봉하 이지원(e-知園)’에서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NLL 대화록) 초본 외에 다른 문건들이 삭제된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광수)는 봉하 이지원 시스템 내에서 삭제 처리된 부분을 발견해 데이터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추가로 삭제된 부분이 없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삭제된 부분을 복원하면서 정상회담 자료 외에도 국내 정치와 관련된 문건이 100여 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이지원은 2005년 참여정부가 개발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등 5명 명의로 특허까지 냈다. 노무현정부 측 인사들은 회의록 폐기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폐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펴 왔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통령실장이었던 문재인 의원은 지난해 10월 회의록 폐기 의혹이 불거지자 “참여정부의 문서관리 시스템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보고된 문서는 결재 과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그 사실이 남겨져 있다. 올라온 문서의 폐기란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김정호 전 기록관리비서관도 지난 7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지원에) 탑재됐던 모든 기록물들이 통째로 이관됐다”며 “삭제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대량 삭제 흔적이 발견되면서 ▶삭제 시점과 목적 ▶삭제 경위 ▶누구 지시를 받고 누가 했는지 등에 대한 논란이 새롭게 불거질 전망이다. 이지원을 들여다본 수사팀 관계자는 “(이지원을 비롯한) 공공기관 전자결재시스템에 삭제 기능은 없지만 삭제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오는 7일부터 노무현정부 때 회의록 관리에 관여했던 핵심 참고인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어떤 문건들이 삭제됐는지에 대한 검찰의 공식적인 언급은 나오지 않고 있다. 회의록을 둘러싼 여야의 정치공방이 가열될 것을 우려하는 태도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는 법원 영장 범위 내에서 회의록 폐기 의혹을 규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고 강조했다.

 검찰이 현재까지 확보한 회의록은 모두 3개다. 삭제됐다가 복구된 ‘초본’과 역시 봉하 이지원에서 발견된 ‘수정본’ 그리고 국가정보원이 보관하다 지난 6월 공개한 ‘국정원본’이다. 각 회의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향후 법 적용에 중요한 열쇠가 된다. 검찰은 국정원본의 지난 2월 NLL 관련 고소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정원에서 보관 중이던 회의록을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아닌 공공기록물로 판단했다. 지난 7월 국정원도 “회의록은 명백한 공공기록물이며 적법한 절차를 거쳐 공개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봉하 이지원에서 나온 나머지 두 개 회의록의 경우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서 보관해온 점 등을 근거로 앞으로 이관이 필요한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한편 여야는 휴일인 개천절에도 정치공방을 벌였다. 새누리당 윤상현 수석부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도대체 누가 역사를 빼돌리고 지우려 했는지 국민의 엄중한 물음에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NLL 대화록 열람위원이었던 민주당 박남춘·우윤근·전해철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대화록이 반환한 이지원 사본에 존재하는 만큼 사초 실종이라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주장은 허구”라고 반박했다.

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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