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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저축, 가입보다 해지 더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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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회사원 김지원(31)씨는 지난 3년여간 매월 20만원씩 납입하던 개인연금저축보험을 지난달부터 내지 않고 있다. 소득공제 혜택과 함께 매달 20만원씩 10년 납입하면 55세부터 5년간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세제개편안이 확정되면 공제 혜택이 줄어든다. 김씨는 “연봉이 성과급 포함 4800만원인데 소득공제 방식이 바뀌면서 연금보험 가입으로 아낄 수 있는 세금보다 남은 8년간 보험료를 내면 손해를 더 크게 보더라”고 말했다. 정부가 8월 내놓은 세제개편안에 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소득공제 혜택이 크게 줄어드는 개인연금저축과 보장성보험에 새로 가입하는 사람이 급감했다. 반면 공제 혜택이 유지되는 체크카드 실적은 쑥쑥 늘고 있다.

 시중은행들에 따르면 각 은행의 개인연금신탁 계좌 수는 올해 내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신한은행의 연금신탁 계좌는 지난 7월 10만7064건에서 8월에는 10만6853건으로 오히려 줄었다. 신규 가입은커녕 해지한 고객이 많다는 얘기다. 우리은행도 계좌 수가 지난 6월 5만3474건에서 8월 5만3383건으로 감소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방카슈랑스의 경우 2011년 3만5000여 건에 가까웠던 신규 가입 계좌 수가 올해는 8월 현재 8000여 건이 채 안 된다”며 “판매 중단 기간을 고려한다 해도 신규 가입은 물론 기존 고객 역시 추가 납입을 꺼리거나 해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 창구에서 판매되는 연금보험도 다르지 않다. 국민은행을 통해 가입한 연금보험 계좌는 지난 7월 30만9037건에서 8월 30만8956건, 9월 30만8756건으로 매달 줄고 있다. 우리은행의 연금보험 신규 판매는 2011년 2만여 건이던 것이 2012년에 1만여 건으로 줄더니 올해는 8월까지 4817건으로 급감했다.

 금융권에선 이구동성으로 ‘세제개편안’을 이유로 꼽는다. 정부안대로 확정되면 가입자의 세금 부담이 크게 늘어나 연금저축의 매력이 떨어진다. 이번 세제개편안을 적용할 경우 연 평균소득이 4000만원인 사람이 현재 소득공제 혜택한도에 맞춰 연 400만원을 연금저축에 들고 있다면 연 15만원가량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우리은행 상품부 관계자는 “(바뀐 세법을 적용한) 새 상품을 내놓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인기를 끌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제도 변경 기간 동안 금융권에서 연금저축 상품을 팔지 못했던 영향도 있다. 시중은행마다 3~4개월가량 세제개편안에 맞는 상품을 준비하기 위해 기존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올해 1월부터 방카슈랑스와 연금저축신탁 판매를 각각 2·4개월씩 중단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소득공제가 가능한 연금저축펀드 상품을 지난 9월부터 판매 중지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세제개편으로 하나의 연금저축 계좌에서 여러 개의 하위 펀드를 둘 수 있게 돼 새로운 전산시스템을 개발해야 했다”며 “은행별로 10~11월 중에 중간 인출이 가능하고 펀드 비율도 바꿀 수 있는 새 상품이 나올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은행업계 관계자는 “개인연금저축 수요의 대부분이 그나마 여윳돈이 있는 중산층 근로자들인데, 이들의 자발적 노후 대비 수요가 세법 개정으로 위축된다면 결국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는 정책 방향과 상반되는 셈”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세제개편안에 웃는 상품도 있다. 소득공제 혜택이 그대로 유지되는 체크카드다. 여신금융협회가 지난 8월 카드 사용실적을 분석한 결과 체크카드 사용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조5000억원 증가한 8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올해 8월 체크카드 승인금액 증가율은 22.1%로 다른 기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반면 지난달 신용카드 사용액은 36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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