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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광주·이천·여주 도자비엔날레를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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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는 세계적인 규모의 예술행사다. 그러나 아이들도 좋아하는 친숙한 문화행사다. 어린이 관람객이 한국 작가 유의정의 ‘기록’이란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도자(陶磁)라는 게 있습니다. 예, 맞습니다. ‘도자기’ 할 때 그 도자입니다. 도자라고 하면, 조선백자니 상감청자니 항아리부터 떠올리지만 사실 도자는 미술 장르에서 훨씬 큰 범주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흙으로 빚어 구우면 모두 도자입니다. 도자를 활용한 예술작품은 그러므로 도예(陶藝)가 되지요.

지난달 27일 오후 6시 경기도 이천 세라피아에서 ‘2013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다시 이름부터 풀어볼까요. 비엔날레(Biennale)는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예술축제란 뜻이지요. 도자비엔날레이니 흙을 구운 도예작품의 축제이겠지요. 그러니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는 경기도에서 2년마다 여는 세계 도자예술 축제를 가리킵니다. 경기도 산하 한국도자재단(이사장 강우현)이 주관하는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는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이합니다. 올해는 개막식 이튿날인 9월 28일부터 11월 17일까지 51일간 경기도 이천·광주·여주에서 열립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는 이탈리아 파엔차 도자비엔날레 일본의 미노 도자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도자비엔날레로 꼽힙니다.

1 소원 도자 나무에 소원을 적고 있는 관람객들.

주말섹션 week&에서 웬 예술행사 타령이냐고요. 이번 가을 나들이 장소로 도자비엔날레를 추천하기 때문입니다. 값비싼 항아리만 잔뜩 널려 있을 것이란 편견은 버리십시오. 맨 처음 말씀드린 대로 도자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흥미진진합니다. 지난달 27∼28일 이틀 동안 전시장을 둘러봤는데, 사람하고 똑같이 생긴 작품도 있었고 도자에 새싹처럼 생긴 식물이 살고 있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작품이 흙으로 빚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아트 투어’라는 말도 있습니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여행방법을 일컫지요. 미술관만 둘러봐도 아트 투어로 쳐주는데, 경기도자비엔날레는 훨씬 여행에 가깝습니다. 행사가 열리는 이천 세라피아, 여주 도자세상, 광주 곤지암도자공원 모두 도자 테마파크로 꾸며져 있습니다. 흙을 만지고 도자와 함께 노는 체험 프로그램이 수십 가지에 이릅니다.

“도자는 직접 손으로 하는 미술입니다. 회화도 붓이라는 매개체가 있잖아요. 그러나 도자는 작가가 직접 손으로 흙을 만져야 합니다. 다른 도구를 빌리지 않고 오로지 손가락 끝의 감각으로 생각을 표현해야 합니다. 도예 하는 사람 손이 거칠고 팔이 두꺼운 이유이지요.”

도자와 다른 미술 장르의 차이를 물었더니 김진아(34) 큐레이터가 들려준 답변입니다. 이 대답을 듣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처럼 장난감도 많지 않던 시절, 우리 아이들은 흙하고 놀았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밖에서 흙만 묻혀 와도 소란이 벌어지지요. 두 손으로 흙을 만져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놀이 아닐까요. 도자비엔날레 행사장 곳곳에는 다음과 같은 구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흙이랑 놀자’.

단언컨대, 흙은 가장 완벽한 놀잇감입니다
체험이 있는 나들이, 세계도자비엔날레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는 세계적인 규모의 미술행사다. 아울러 아이를 둔 부모에게는 나들이 장소로 손색 없는 곳이기도 하다. 도자비엔날레가 열리는 경기도 이천·여주·광주에는 행사 기간엔 물론이고 1년 내내 흙을 갖고 노는 체험 프로그램으로 가득하다. 한국도자재단이 추천한 대표적인 체험 프로그램 네 가지를 소개한다.

2 키즈 비엔날레의 대표 놀이인 변기 레이싱.

변기 타고 씽씽 - 키즈 비엔날레

이름 그대로 아이들이 도자를 갖고 노는 놀이터다. 비엔날레 기간 동안만 운영한다. 교육공간과 체험공간·놀이공간으로 구성돼 있는데 교육공간에는 도자의 역사를 배우는 과정 등 프로그램 4개가 마련돼 있다. 체험공간은 흙놀이와 도자병풍 만들기 등 5가지 프로그램을 갖췄다. 놀이공간의 대표 프로그램은 도자 레이싱이다. 어린이 변기 아래에 바퀴를 달아 앉아서 달릴 수 있게끔 만들었다. 아이들이 변기를 타고 실내에 설치한 레일을 달리며 경주하고 뛰어논다. 변기도 넓은 의미로 도자다. 이 외에도 도자 악기 연주, 도자 볼링과 낚시 등 여러 놀이가 있다. 이천 세라피아 세라믹스 창조센터 1층. 초등학생 1만원, 어른 3000원. 031-645-0664.

3 이천 세라피아 연못 ‘구미호(九美湖)’와 세라믹스 창조센터 전경.

집합! 흙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장난

이천·광주·여주 세 곳 모두에서 흙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놀이를 비엔날레 기간에 마음껏 할 수 있다. 가족 대항전으로 벌어지는 흙 높이 쌓기는 흙 5㎏을 20분 동안 가장 높이 쌓는 팀이 이기는 놀이다. 손물레 체험도 가족 대항전이다. 가족 단위 2인1조 10개 팀이 손물레를 이용해 흙 5㎏을 30분 안에 그릇으로 만든다. 가장 높고 얇게, 그리고 예쁘게 만든 팀이 승리한다. 흙 타래 길게 말기 게임은 개인전이다. 흙 5㎏을 가장 길게 늘이면 승리한다. 하루에 두 번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 외에도 핀칭게임, 라쿠가마 즉석구이 등 여러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모든 게임에서 이기는 팀에게 기념품을 준다. 비엔날레 기간 중 주말·공휴일에 운영. 참가비 없음.

4 1박2일 캠프 프로그램에 참가한 가족이 흙 늘이기 게임을 하고 있다.

오직 하나뿐 … 나만의 도자 만들기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도자를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천·광주·여주 세 곳에서 모두 진행되는데 장소마다 프로그램이 조금씩 다르다. 이천 세라피아에는 소원 도자 나무가 있다. 사과·나비 등 도자 풍경을 걸어놓은 나무 모양 조형물에 소원을 적어 매단다. 도자 풍경은 신철순 작가의 작품이다. 풍경 종류에 따라 체험비가 다르다. 모빌 5000원, 사과 2만원. 여주 도자세상에서는 비엔날레에서 찍은 사진이나 그림을 즉석에서 도자 머그컵이나 액자에 프린트해서 준다. 체험비 1만원. 광주 곤지암도자공원은 공예체험 프로그램을 18가지나 준비했다. 흙에 홈을 내 문양을 새기고 다른 색깔의 흙을 채워 장식하는 상감기법을 직접 해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1만원.

작가와 1박2일, 풀코스 도자캠프

이천 세라피아와 광주 곤지암도자공원은 도자 테마파크다. 면적도 넓다. 넓은 공원에 도자를 주제로 삼은 다양한 시설이 있는데, 캠핑장도 들어서 있다. 이천에서는 작가와 함께하는 1박2일 캠프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1박2일 동안 도예작가와 함께 도자기를 만드는 전 과정을 시간표에 따라 진행한다. 1인 5만원(입장권, 3끼 식사 포함). 031-645-0642. 광주 캠프는 자유 캠프다. 광주 곤지암도자공원 허허벌판에 마련된 캠핑장 시설을 이용하며 비엔날레 전시를 관람할 수 있고 조각공원도 산책할 수 있다. 4인 기준 글램핑 9만9000원, 캐러밴 13만2000원. 입장권은 포함돼 있지만 음식은 제공하지 않는다. 031-932-8188.

5 미국 작가 제이콥 래더의 ‘작은 배들’이란 작품. 도자 겉면에 식물이 살고 있다.
6 호주 작가 비푸 스리비라사의 ‘집-소통,가족, 문화, 인연’이란 작품. 관람객이 작품에 흙조각을 붙일 수 있다.
7 한국 작가 맹욱재의 ‘깨지기 쉬운’이란 작품. 알 모양의 도자가 레일을 굴러와 깨지길 반복한다.

안 보면 섭섭한 이색 작품들
그릇 겉에서 식물이 쑥쑥 ‘거꾸로 도자기’

도자비엔날레의 얼굴은 역시 전시다. 이천·여주·광주 행사장마다 여러 전시가 진행되는데, 이천 세라피아 창조센터에서 메인 전시 ‘국제지명공모전’과 특별전시 ‘HOT Rookies’가 열린다. 국제지명공모전에는 ‘공동체’라는 주제로 18개국에서 40세 이상 작가 27명이 참여했고, 특별전시 ‘HOT Rookies’는 ‘역설의 미학’이라는 주제로 8개 나라에서 40세 이하 작가 20명이 참여했다.

가족과 나들이를 나왔다면 이 정도까지만 알아도 족하다. 일반 관람객에게 중요한 건 개별 작품에서 받는 감흥이기 때문이다. 한국도자재단 추천을 받아 일반인이 흥미를 느낄 만한 작품 몇 개를 소개한다.

우선 대상 수상작. 쿠쿨리 벨라드라는 미국 작가의 ‘수호자 산티아고’ 외 4개 작품이 대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페루 출신의 작가가 페루 전통문화의 아이콘과 서양문명의 아이콘을 결합해 조각상을 만들었다. 서양 제국주의에 시달린 제3세계 국가의 정통성을 말하고 있다.

미국 작가 제이콥 래더의 ‘작은 배들(Little Boats)’이란 작품은 도무지 도예작품 같지 않다. 살아 있는 초록 식물이 항아리를 온통 덮고 있다. 도자 항아리 표면에 ‘치아’라는 식물의 씨앗을 붙이고 싹을 틔워 완성했다. 독일 작가 라이너 쿠르카의 작품은 충격적이다. 인종이 다른 10대 소녀 5명을 실제 크기대로 재현해 놓았다. 말하자면 실제 크기의 도자 인형 같다. 유심히 바라볼 건, 그들의 불안한 눈동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윌마 크루주가 출품한 ‘요람’은 유아 모양의 흙 인형 1000개를 전시장 바닥에 깔아놨다.

8 올해 대상작인 쿠쿨리 벨라드의 작품. 스페인에게 정복당한 페루의 전통문화를 말하고 있다.

한국 작가 맹욱재의 ‘깨지기 쉬운(Fragile)’은 일종의 구성작품이다. 알 모양의 도자가 2m 높이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10m쯤 내려오다 깨진다. 유의정의 ‘기록’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작품이다. 나이키 운동화, 루이뷔통 핸드백 같은 익숙한 대중문화 아이콘이 분홍색 벽면에 진열돼 있다. 호주 작가 비푸 스리비라사의 ‘집-소통, 가족, 문화, 인연’은 관람객이 참여하는 작품이다. 흰색 항아리에 관람객이 직접 흙 조각을 붙일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지난달 28일 개막한 경기도자비엔날레(kocef.org)는 오는 11월17일까지 경기도 이천·여주·광주 세 곳에서 동시에 열린다. 도자비엔날레 기간에 행사가 열리는 이천 세라피아, 여주 도자세상, 광주 곤지암도자공원을 잇는 무료 순환버스가 운행한다. 이천~광주 구간은 오전 10시부터 40분 간격으로, 이천~여주 구간은 50분 간격으로 하루 여섯 차례 순환버스가 출발한다.

각 지자체가 주최하는 이천도자기축제·광주왕실도자기축제·여주도자기축제도 같은 기간에 열린다. 도자비엔날레 행사장 세 곳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통합입장권 가격은 어른 1만원, 어린이 5000원. 입장권을 사면 한국민속촌, 이천 테르메덴, 곤지암리조트 수목원 화담숲 등 경기도에 있는 관광명소 이용요금을 할인 받을 수 있다. 031-631-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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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손민호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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