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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폐의 기로에 선 홍릉 임업시험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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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내 최대의 식물원인 서울 청량리 소재 임업시험장이 정부의 과학「센터」건립계획으로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14일 과학기술처장관이 산림청장에게 보낸 임업시험장의 관리이관요청 공문으로 뒤늦게 밝혀진 이 사실은 시험장 관계당국은 물론 학계의 심한 반발을 받고있다.
임업시험장부지에 들어선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를 중심으로 이미 6천평의 부지를 확정한 국방과학연구원 둥 일련의 과학 「센터」를 만든다는 계획은 연초 과학 「센터」설립추진위원회 구성으로 구체화돼온 것이다. 경제기획원차관·과학기술처차관과 산림청장 등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이미 이곳에 한국 과학원·한국개발원 등을 포함한 단지를 만들기로 원칙을 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2년 설립된 임업시험장은 평균 40년 이상 된 목본류 1천여종 3만6천여 그루, 초본류 7백50종 7만5천 그루를 가진 식물원과 시험림·목재공학실험시설 등을 갖고 있다. 특히 지금은 구하기가 어려운 북한산 수종 1백종, 「이탈리아」산 등, 세계 8개국 1백30여종의 나무와 50년 이상된 세계신종의 「돌배나무」등 문화재로서 보호해야할 귀중한 식물들이 많다.
수원에 서울대농대의 임업시험장이 있지만 그 규모가 이것의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국내 유일의 종합생물과학 「센터」이다. 이곳에서는 전적으로 실험만 해왔으며 조림은 광릉에서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합판·「펄프」등을 국내에 많은 수종으로 제조하는 실험도 해오고 있다. 이러한 임업시험장을 과학 「센터」건설로 폐기시킨다는 보도가 있자 농림·생물과학계의 6개 국내학회는 그 부당성을 지적, 현재의 수목원 및 시험림 부지18만평을 그대로 두고 연구시설을 더욱 확충해야한다고 관계기관에 건의했다.
한국농촌수산학협회(회장 조백현), 한국식물학회(임형빈), 한국식물분류학회(박만규), 한국식물보호학회(정후섭), 한국육종학회(한창렬), 한국림 학회(현신규) 등의 공동명의로 된 이 건의서는 임업시험장이 현재의 위치에 있어야하는 이유 6개항을 들고 있다.
ⓛ시험장의 진귀한 수종 가운데 3분의2가 30년 이상된 것들이며 옮겨 심을 경우 고사 또는 비정상적 성장으로 실험가치가 전혀 없는 것이 된다. 관계학계 및 학교교육의 야외교실로 활용되고 있으며 외국 기관과의 자료교환을 원활히 해왔다.
②이전하면 식물원은 없어지게 되며 한국의 생물학이나 임업과학은 파경에 처해진다. 식물원이 그 나라의 과학시설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있다는 세계추세에 미루어 학술의 발전은커녕 후퇴를 초래할 것이다. 영국의 「큔」식물원, 일본의 「메구로」식물원, 미국의 「아널드」식물원 등이 또한 한결같이 그 나라의 수도중심에 1백여년을 그대로 버티고 있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③식물의 생장기를 통한 관찰연구는 연구기관과 분리하여 시험장을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④공해방지·보건 및 위생, 그리고 정서생활을 위해서도 도시임야의 발전은 시급한 실정이다. 앞으로 오히려 이 시험장과 같은 산림공원이 도시 가운데 계속 조성돼야할 것이다.
⑤현재 시험장이 갖고있는 식물원 외에도 국내외 식물표본 9천점, 곤충표본 2천점, 동물표본 5백점, 목재표본 2천1백50점 등은 귀중한 연구자료로서 현 위치의 시험장과 분리시켜 그 활용도를 생각할 수 없다.
⑥목재공업발전을 위한 연구 「센터」가 되고 있다. 여기서 연구한 결과는 각 공장에서 계속 이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건의서를 낸 학자들은 우선 정부당국에 과학의 정의를 묻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농림과학은 과학이 아니냐는 데까지 비약하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본래 30만평의 대지를 갖고 있던 임업시험장이 67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서고 과학정보「센터」와 부지가 확장된 국방과학연구소 등으로 현재 18만평 대지로 줄어들었다.
그러면서도 관계자들은 물리·화학·공학 등의 과학연구소가 같이 있으면 농림과학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었고 현재의 수목원 8만평, 시험림 10만평이 좁지만 그런 대로 지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임업시험장의 한 간부는 『야금야금 먹어 들어와 이젠 한국의 농림·생물과학을 없애버리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한편 과학기술처나 한국개발원을 그곳에 세우겠다는 경제기획원 측은 종합과학「센터」를 세우겠다고 말하면서 과학의 범주를 편리할 대로 잡고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편 임업시험장의 관리이관을 요청했던 과학기술처관계자는 『지금 대지계획은 3개의 안을 놓고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관리이관요청을 한 것이 곧 임업시험장을 없애거나 수목원에 건물을 짓겠다는 확정된 계획은 아니다』라고 말끝을 흐렸다. 경제기획원에서도 『아직 확정된 계획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식물학자 박만규 박사(고대교수)는 『50년간 길러놓은 나무들을 옮기거나 식물원만두고 시험장 건물을 옮기라는 것은 임업시험을 없애라는 것과 같다』면서 『건물은 돈만 있으면 지을 수도 있지만 진귀한 수종을 이만큼 모으고 기르는데는 돈만이 든 것이 아닌 우f;의 국보』라고 말했다.<권순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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