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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분단한국을 이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란」국민들은 지난 1945년 소련군에 그들의 일부영토를 점령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분단된 한국을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우리사정에 퍽 밝은 편입니다. 』
대중동 외교의 전초지라고 불리는 「이란」에서 만3년9개월 동안 일하고「브라질」 로 전임케된 노석찬대사는 「이란」 국민들의 대한국관을 이렇게 설명해 준다. 1천4백km의 국경을 소련과 접하고있는 「이란」은 『국방을 외교로 「커버」 하고 있다』고 말한 노대사는 우리도 이점은 꼭 배워야한다고 강조한다
-오랫등안 근무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한국과 너무 시차가 심하다는 것이다. 그곳의 휴일은 금요일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동부와 연락할때도 많은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또한 「이란」은 입헌군주제이기 때문에 모든 격식이 까다롭고 공문서마저 그 나라말만을 써서 언어의 장벽으로 많은 곤란을 겪었다.
-「이란」국민들의 대중공관과 북괴의 침투활동은?
소련과는 많은 경제·기술협력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중공의 진출에 대해서는 상당히 견제를 하고있다. 이것은 「이란」왕이 49년과 60년 두 차례에 걸쳐 저격을 당한 적이 있는데 두 번 다 저격범이 친중공계「테러」분자였다는 데도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북괴는 지난69년「자헤디」외상이 방한, 한-「이란」우호조약을 체결하기 전까지만 해도 통상사절단·언론인 시찰단 등을 파견했으나 그후에는 한번도 온 일이 없다.
-아·중동지역에서는 일본상품이 판을 친다고 들었는데 대 「이란」 수출확대 전망은?
일본상품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급능력만 충분하다면 우리상품도 충분히 일본상품과 경쟁을 할 수 있다. 내가 처음 부임할 당시 수출실적은 겨우 1백만 「달러」정도였는데 지난해에는 7백만「달러」를 돌파했다.
곧 부임차「브라질」로 떠나는 노대사는『생소한「브라질」의 지리·역사 등을 공부하기 위해서 귀국했다』면서 『한때 주한 「브라질」대사관의 철수문제로 미묘해진 양국관계를 정상궤도에 올려놓겠다』고 말했다. <길종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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