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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군주론』 낸 지 500년 그와 마르크스는 '사람'에서 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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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라종일 한양대 석좌교수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척결된다 해도 권력의 문제는 또 나올 수밖에 없다. 정치에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복잡하다. 그래서 마키아벨리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라 교수 뒤는 마키아벨리 초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마르크스(1818~1883)에겐 없는 것이 마키아벨리(1469~1527)에게는 있었다. 그건 바로 ‘사람’이었다.”

 27일 라종일(73·전 주일대사) 한양대 국제학부 석좌교수를 만났다. 올해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를 탈고한 지 꼬박 500년이다. ‘마키아벨리 『군주』 500주년 기념위원장’을 맡고 있는 라 교수는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에 대학에 다녔다. 당시 학생들의 지적 화제는 단연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는 큰 매력이자 숙제였다. 금기라서 더 끌리기도 했다. 그러다 대학 2학년 때 영어 원서에서 마키아벨리를 발견했다. 내겐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의 대명사쯤으로 이해될 뿐이었다.

 충격의 이유를 물었다.

 “마르크스가 서양 근대를 가장 잘 이야기해준다면, 마키아벨리는 아득히 먼 옛날부터 사람이 모여 살았던 집단, 거기에 숨겨진 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라 교수는 마키아벨리와 마르크스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풀었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르크스에게는 사회적 구조만 있다. 그에겐 사회적 세력과 구조적 문제가 중요하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에게는 ‘살아있는 사람’이 있더라. 세력과 구조를 만든 인물이 있더라. 사람이 있는 정치와 사람이 없는 정치는 다르다. 정치에 사람이 들어갈 때 비로소 생명이 도는 느낌을 받는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을 말한다. 인간은 복잡하다. 자로 잰 듯이 딱 떨어지지 않는다.

 “여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사람들이 계급이니, 계층이니 말을 한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사람들의 열정, 시기, 질투, 그리고 사랑 같은 거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인간의 내면이 단순한 도식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마키아벨리도 그렇게 인간을 들여다봤다. 그런 인간과 정치가 만나서 빚어내는 화학 작용에 주목했다.

 “인간에겐 욕망이 있다. 권력욕도 욕망이고, 이상주의도 마찬가지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단순히 군주를 위한 전략전술 책이 아니다. 정치와 정치권력에 대해 우리가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진실을 보여준다. 그건 사람 사회에서 지금껏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근본적인 한 측면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왜 마키아벨리가 필요한지 물었다. 라 교수는 “정치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우리 주위를 봐도 그렇다. 정치에 실망하면 극단적 처방을 하게 된다. 은둔하거나, 회피하거나, 혐오에 빠진다. 마키아벨리는 14년간 유능한 외교관으로 활동하다 실각했다. 나머지 인생으로 집필을 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정치는 불완전하다는 명제를 첫 단추로 끼우고 가는 거다”고 말했다.

 오는 8일 오전 9시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마키아벨리 『군주』 5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열린다. 마키아벨리 『군주』 500주년 기념위원회, 플라톤 아카데미, 한국밀레니엄연구원이 공동 주최한다. 개회식에서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가 ‘마키아벨리의 생애’를 짚는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마키아벨리와 한국 민주주의’를,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 공동소장이 ‘민주적 리더십-『군주』의 가려진 진실’을, 연세대 김상근 교수가 ‘마키아벨리와 그의 시대’를 각각 발표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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