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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고행의 여정 다시 태평양상으로|김찬삼여행기 여객선 페어스타호에서 제1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매혹의 섬 「타이티」에서는 「고겡」처럼 이 섬의 풍물을 사랑하며 일생동안 살고 싶지만 여정이 정해져 있으니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폴리네시아」의 답사는 이 「타이티」를 종착역으로 하여 막을 내리기로 했다. 그리하여 이번엔 중미의 「파나마」를 향하여 「타이티」섬에서 「페어스타」라는 순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이 배는 「바다의 귀부인」이라고 할 만한 호화선인데 승무원은 3백75명이며 여객 정원수는 2천2백76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탄 배는 관광「시즌」이 지난때여서 여객은 반쯤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배삯도 10% 에누리를 해 주었다.
한번 급유를 하면 세계의 둘레의 반을 항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데다가 해수를 하루에 4백톤의 담수로 만들어쓰는 시설까지 갖춘 신형이다. 내부장치며 선실들이 모두 으리으리하다. 그러나 내가 든 선실은 배 맨밑에 있는 창문도 없는 가장 값싼 방이다. 말하자면 선박속의 감방이랄까. 그런데 이 배는 「이탈리아」의 민간자본으로 되어있다지만 세금을 싸게 내기위한 방법으로서 「리베리아」의 선적을 갖고 있어서 이 나라의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최후의 낙원」이라는 「폴리네시아」여행을 고행으로 끝마치고 나니 새삼스럽게 여러 섬들이 그려진다. 세계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육지에선 인구폭발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필리핀」부터 「타이티」까지 남태평양을 더듬어오면서 느낀 것은 개척할 곳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었다. 호주의 서부는 1평방km에 0·4명꼴의 인구밀도로서 그 넓디넓은 대륙에서는 무선으로 수업을 하는 형편이라 앞으로 얼마든지 이민을 할 수가 있다.
그런가하면 「뉴기니아」의 해안지대에서는 정부에서 시험으로 논을 만들었는데 수익이 예상보다 좋았다는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었다.
인구가 많고 먹을 것이 없어서 전쟁을 한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싸움을 즐기기 때문에 전쟁을 한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미개척지는 문명국의 힘을 빌어야 개척되겠지만 지금 세계 각국이 으르렁거리는 마당에 세계의 평화적인 개발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세계이성에 호소해서라도 이루어야할 과제가 아닐까.
태평양은 15세기이후 항해가들이 발견하여 백인들이 지배하고 있으나 아직도 가장 값진 진주는 찾지못한 셈이다. 이같이 이 지구상에 미지수가 있다면 「아프리카」와 더불어 이 태평양지역일 것이다.
태평양엔 오만가지 섬들이 하늘의 성좌처럼 펼쳐져 있는데 이 수없이 많은 섬들엔 낯선 인종들이 살고 있다.
거의 미개한 사람들이며 식인종들도 있지만 상도의 문화를 지녔다는 서구인보다 너무나도 선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학문이며 지식이 도리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무지속에 사는 태평양지역이야말로 「선한 땅」이었다.
그런데 관광지가 된 몇몇 섬들엔 여객기며 여객선이 드나들지만 거의 모든 섬들은 고도처럼 쓸쓸하다. 그러나 이런 섬에 사는 사람들의 미소는 밝고 그들의 생활은 건전하다. 여기선 우리나라 서울에서 겪는 교통사고가 있을 리도 없다. 이런 섬에선 아무리 만취하여 쏘다녀야 차에 치여 죽을리는없고 부상을 입는다면 고작 야자나무에 부딪쳐 이마를 다친 정도랄까.
이번 남태평양여행은 섬에서 섬으로 순례자처럼 찾아 다니는 고행이기도 했다. 큰 파도에 휩씁릴 듯한 자그만 섬에도 생전보지못한 살갗이며 뼈대들이 다른 인종들이 사는데 어쩌다 비행기가 이 섬 하늘위에 뜰양이면 신기하여 온 마을 어린이며 어른들이 나와서 환호성을 올리며 반긴다. 이만큼 미개한 지역이다.
『보물섬』의 작가 「스티븐슨」이나 화가 「고겡」처럼 문명을 저버리고 현실도피를 하여온 비경과도 같은 곳으로만 생각될지도 모르나 이 섬들도 이젠 세계의 정치며 경제의 움직임과 동떨어져 사는 것은 아니다. 이 태평양은 이미 미국과 「프랑스」의 핵실험을 비롯하여 소련의 유도탄실험장으로 쓰인만큼 「세계운명의 공동체」로서 안일만을 누릴 수는 없게 되었다. 따라서 지난해 10월에는 「피지」섬이 독립을 한만큼 태평양은 이젠 세계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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