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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눈길 끄는 ‘자연주의 출산’

중앙일보

입력

자연주의 출산 전용 병실. 의료진의 개입을 최소화해 산모가 가장 편안한 출산을 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자연적’이라는 개념은 보통 우리 몸에 이롭다는 의미와 통한다. 산모 대부분은 자연분만을 선호한다. 출산 후 통증도 적고 수술에 비해 회복도 훨씬 빠르다. 하지만 자연분만이라고 해서 무조건 자연적인 것은 아니다. 자궁수축제(옥시토신)를 투여해 인위적으로 출산을 앞당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들어 자연의 개념이 보다 강조된 ‘자연주의 출산’이 각광을 받고 있다. 강남차병원은 국내에서는 드물게 지난 8월 27일부터 자연주의 출산을 도입한 전용병실을 운영 중이다.

유도분만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아

자연주의 출산은 말 그대로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출산법이다. 이를 위해 의료진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의료시스템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출산을 막을 수 있어서다. 일반적으로 산모는 수액을 맞거나 금식을 하고, 모니터링 기기를 부착해야 했다.

 그러나 자연주의 출산에서는 이런 처치가 대부분 생략된다. 건강한 산모에게는 굳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처치들은 혹시 모를 응급상황 시 쉽게 수술하기 위한 것이다. 산모가 출혈 시 혈관이 좁아져 혈관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미리 맞고 있는 수액을 혈액으로 교체하기 위한 용도다.

자연주의 출산 병실을 전담하는 강남차병원 김수현 교수(산부인과)는 “산전진찰이 발달하면서 산모를 환자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생겼다”면서 “산모 대부분 수액이나 금식 같은 조치 없이도 잘 분만하고, 오히려 불편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때문에 의료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만 개입하도록 최소화 했다”고 덧붙였다.

 기존 분만 환경이 의료진 중심이었다면 자연주의 출산은 산모와 태아가 중심인 셈이다. 분만 시에도 탯줄을 바로 자르지 않고 태맥(탯줄의 맥박)이 저절로 없어진 뒤에 자른다. 태반도 인위적으로 꺼내지 않고 저절로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모든 과정이 자연적으로 이뤄지도록 한다.

 유도분만도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는다. 김교수는 “유도분만 자체가 자궁수축제를 투여해 인위적으로 자궁경부가 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특별한 경우에만 유도분만을 한다”고 말했다.

유도분만이 필요한 경우는 양수가 적어지거나 태아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빨리 꺼내야 할 때, 임신 42주가 넘도록 출산이 이뤄지지 않을 때 등이다.
 

스윙체어·에어볼로 진통 줄여

산모의 진통을 줄이는 스윙체어

 자연주의 출산 병실은 병원에 오지 않고 애를 낳던 옛 시절과 거의 유사하다. 병실이라기 보다 집 구조에 가깝다. 침실과 거실이 있고 침실 천장에는 산모가 진통 시 잡아당기는 삼줄도 매달려 있다.

 화장실과 샤워시설도 갖췄다. 내 집 같은 환경에서 산모가 최대한 편안하게 분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공간이 충분해 산모와 가족이 진통·분만·출산의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다. 평소처럼 생활하다 진통이 오면 스윙체어와 에어볼을 통해 진통을 줄일 수 있다.

 분만은 ‘라마즈 분만법’을 기본으로 한다. 이는 기분 좋은 생각을 하고 몸을 이완하는 연습을 통해 진통을 줄여주는 분만법이다. 또 자연주의에 걸맞게 분만 당시 태아환경과 차이를 최소화하는 르봐이에 분만도 적용된다. 조명을 어둡게 해주고 태교음악을 들려준다. 출산 직후에는 따뜻한 물로 목욕도 시켜준다. 수중분만을 원하면 거실에 마련된 욕조로 옮겨 분만을 진행할 수도 있다.

 분만 후에는 산모와 신생아가 함께 할 수 있도록 모자동실(母子同室)이 운영된다. 포유류동물이 새끼를 낳고 바로 젖을 물리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기 위한 것이다. 출산 직후 수유하면 산모 몸에 옥시토신이 분비돼 산모회복에 도움이 되고, 아기는 엄마의 심장소리를 느끼면서 정서적 안정을 취하게 되는 이치다.

 자연분만이더라도 출산 직후 산모와 아기가 10분 정도만 함께 있다가 검진을 위해 떨어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차병원은 출산 후 모자가 접하는 시간을 2~3시간으로 충분히 늘렸다. 이런 방식을 새끼를 낳아 배 주머니에 넣고 키우는 캥거루와 같다고 해서 ‘캥거루 케어(Kangaroo Mother Care)’라고 부른다.

 캥거루 케어는 저출생체중아(2.5kg미만의 신생아)의 사망률과 질병이환율을 줄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김 교수는 “기존의 시스템은 산모가 불편한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었지만 자연주의 출산은 산모와 태아를 최대한 배려해 고통을 줄이고 행복하게 출산하도록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담 의사·간호사 24시간 상주

 의료 개입은 최소한으로 줄였지만 필요한 상황에 대비해 한층 강화된 시스템을 갖췄다. 전담 의사와 간호사가 24시간 병원에 상주하면서 산모의 건강상태를 수시로 점검한다. 의사는 레지던트가 아닌 산부인과 교수가 당직을 선다.

 따라서 응급상황 시 전문의의 처치가 바로 가능하다. 상주하는 의사는 마취과와 소아청소년과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간 협진이 가능하고 신생아중환자실도 상시 운영된다. 김 교수는 “분만 전문병원 중에 소아청소년과가 없어 협진이 안 되고 신생아중환자실도 없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병원에선 분만 이후에도 산모와 신생아의 안전을 위해 응급상황에 빠른 조치가 가능하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이런 산모는 자연주의 출산 어려워요

1. 제왕절개로 낳은 경우
 제왕절개를 하면 상처가 남는데, 다음 출산 시 상처가 벌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극단적인 경우 산모나 태아 생명이 위험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일반적인 고위험 산모
 기본적으로 고위험 산모에겐 권하지 않는다. 산모가 35세 이상, 직계가족의 선천성 기형 병력, 임신 중 감염, 다량의 자궁근종이나 자궁기형, 흡연 및 알코올 중독, 과도한 저체중 및 비만 등에 해당하는 경우다.
 
3. 산모나 태아에 이상이 있는 경우
 자연주의 출산은 산모와 태아가 모두 건강해야지만 가능하다. 한쪽만 건강하다면 자연주의 출산이 어렵다.

4. 자연분만이 어려운 경우
 자연분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골반이 남성형으로 작거나 진통이 지속돼도 분만진행이 안되는 경우, 탯줄이 감겨있는 경우가 해당한다.

▶김수현 교수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사진="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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