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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정책 헛심 ? … 정년 늘어 없어질 임금피크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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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용노동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내년에 모두 11조8042억원을 투입한다고 29일 밝혔다. 인건비와 사회보험료 지원을 확 늘려 300명 미만 중소기업에서 3만7000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현재 64.6%인 고용률을 내년에는 65.6%로 1%포인트 높인다는 것이다. 내년 일자리 예산은 올해보다 7.7%(8422억원) 늘어났다. 내년 정부의 총지출 증가율(4.6%)보다 높다. 돈을 확 풀어서라도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투영돼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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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률 1%P 높이려 8422억 늘려

 문제는 정책의 실효성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동응 전무는 “돈을 준다고 추가 고용하는 기업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직된 노동 시장을 유연하게 만들고, 호봉제 중심의 임금 체계를 직무와 성과급제로 개편하는 등 노동 시장의 벽을 허물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근로시간을 줄이면 일자리가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장시간 근로 개선과 시간제 일자리 창출 정책에 1조9193억원을 배정한 이유다. 문제는 근로시간을 단축한다고 일자리가 생기느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임금을 낮추지 않고 근로시간만 단축하면 비용 인상과 물가 상승을 유발해 중장기적으로 고용창출에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프랑스는 2000년 주당 근로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이는 ‘노동시간 단축의 지원과 촉진에 관한 법(일명 오브리법)’을 시행했다. 줄어드는 근로자 임금은 정부가 상당 부분 지원했다.

프랑스서 실패한 근로시간 축소에 2조

몇 년 뒤 프랑스 의회는 “인플레이션만 일어나고, 나이 많은 사람의 퇴직을 앞당기고, 일자리 창출은 안 된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언론은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노동 시장 개혁조치”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임금을 안 낮춰도 생산성으로 커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현실도 고용부의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다. 1990년 주당 근로시간을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2004년 44시간을 40시간으로 단축했지만 고용률은 1% 안팎에서 큰 변동이 없었다. 근로시간 단축만으로는 신규채용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시간제 일자리 창출 사업 예산은 중소기업에 집중 지원된다. 주로 인건비 보전과 같은 명목이다. 이달 초 노동부 주관으로 열린 기업 인사담당자 회의에서 대기업 관계자는 “기간제나 임시직 근로자를 시간제로 돌릴 가능성이 커 고용률 제고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원금이 기존 근로자의 인건비로 전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각종 복리후생제도 등의 부대비용을 고려할 때 기업 입장에선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장점이 없다”고도 했다.

 임금피크제 지원금을 올리는 정책은 바뀐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근로자 1인당 연간 600만원이던 임금피크제 지원금을 840만원으로 대폭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임금피크제 지원제는 2006년에 시작됐다. 이 제도를 활용해 50대 중후반에 퇴직하던 근로자를 임금을 낮춰(임금피크제) 60세까지 일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최근 법이 개정돼 2016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의무화됐다. 금융권과 산업계에선 안 그래도 유명무실한 임금피크제가 속속 폐지되거나 축소되고 있다. 오히려 산업현장에선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늘리라는 요구가 나온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올해 임단협에서 61세로 정년을 늘릴 것을 요구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스펙 초월 vs 일하며 학위 따기’ 모순도

 고용부는 또 “취업해서 돈도 벌고 학위도 딴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일·학습 듀얼시스템’을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일하면서 대학을 다닐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학력을 따지지 않고 능력만 있으면 채용하도록 한다는 ‘스펙 초월 고용시스템 구축 정책’과 배치된다.

 여성 대체인력뱅크 운영사업은 공공부문에서 시범실시했지만 실패했다. 지난해 공공부문에서 육아휴직에 따른 대체인력으로 고용한 사람은 1089명으로 전체 육아휴직자 대비 3.7%에 불과했다. 이 중 대체인력풀을 통해 매칭된 사례는 39건에 그쳤다. 나머지는 기관별 공모로 충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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