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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건물을 품다 … 건물, 풍경이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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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자연의 선을 모티브로 한 국립생태원 생태체험관. 건축가 박도권씨가 설계했다. 곡면 유리를 통해 내부 식물에 햇빛이 충분히 스며들도록 했다. [사진 한국건축가협회]

구릉지에 지어진 박물관은 마치 산의 일부인 양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도심 주택가의 출판사 사옥은 지역주민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한국건축가협회(회장 이광만)가 지난해 초부터 올 6월까지 준공된 건축물 중 ‘2013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을 발표했다. 1979년 제정된 이 상은 국내 최고 권위의 건축상으로 꼽힌다.

 올해 수상작 7개 건축물은 주변경관에 녹아 들며 외부와의 소통을 배려한 점이 특징이다. 심사위원장 유걸(건축가)씨는 “본래 쓰임새에 공공 기능을 가미하는 등 외부를 향해 열린 건축물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버려진 공간에 새로운 용도를 부여한 리모델링 작품이 많았다”고 했다. 오늘날 한국 건축의 키워드를 알아본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을 리모델링한 서울시립대 선벽원(사진 위)과 계단을 이용한 공간구성이 돋보이는 출판사 휴머니스트 사옥. [사진 한국건축가협회]

 ◆건축도 자연이다=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 생태체험관(박도권 설계)은 주변 언덕들의 나지막한 곡선을 외관에 그대로 반영했다. 태양의 궤적을 분석해 온실별로 균일한 채광량을 확보하는 등 첨단기술도 동원됐다.

 심사위원들은 “건축물 외부 형태와 내부 공간 구조가 긴밀하게 연계됐다”고 평했다. 언덕 위에 웅크리고 있는 금속 파충류를 연상시키는 경기도 연천군의 전곡선사박물관(아누크 르정드르·니콜라 데마지에르 설계)은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혁신적인 외관과 높은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설계팀은 “굽이치는 한국의 강 이미지를 반영한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시공간의 재탄생=최근 건축계 화두가 되고 있는 리모델링 작품 중에는 서울시립대 캠퍼스 내 선벽원(善<7513>苑·이충기 설계)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캠퍼스 한 켠에 방치돼 있던 1937년 건립된 건물 3동이 학생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기존 재료인 벽돌과 목재의 고풍스런 질감을 살리면서, 천장의 목재 트러스를 과감히 노출시켜 시원스런 느낌을 더했다. 이충기 교수(서울시립대 건축학부)는 “건물 내에 잠재해 있는 시간과 공간의 숨결을 살리고 싶었다”고 했다.

 인천 강화도의 해든 뮤지엄(배대용 설계)은 건축가가 6년 전에 완공한 가정집을 미술관으로 확장시킨 프로젝트다. 집 앞의 탁 트인 경관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미술관 공간 대부분을 땅 속에 배치했다. “기존 건축물과 연계가 뛰어나고, 주변 환경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평가다.

 ◆소통하는 건축=서울 마포구 휴머니스트 사옥(김준성 설계)은 개별 출판사의 업무공간일 뿐 아니라 책을 아끼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이다. 수많은 계단으로 연결된 미로 같은 내부에는 사무실과 카페, 교육공간이 스치듯 공존한다. “복잡한 듯 하면서도 유려하게 연결된 공간 구성이 건축가의 역량을 느끼게 해 준다”는 평이다.

 카페이자 게스트하우스인 경남 거제시 머그학동(유현준 설계)은 흰색 박스를 여러 개 겹쳐놓은 듯 세련된 외관이다. 회전하거나 접히는 벽이 외부와 내부의 구분을 없애고 공간에 자율성을 부여한다. 서울 서초구의 개인주택 방배동집(조남호 설계)은 ‘ㄱ’자 형태로 주거공간을 배치하고 하늘로 트인 마당을 만들었다. 심사위원들은 “극히 사적인 공간이지만 가족, 이웃과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배려했다”고 평했다.

 수상작은 10월 중 열리는 대한민국건축문화제에서 시상·전시되며, 작품집으로도 출간된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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