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6)평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53년「네루」는 인도를 비롯, 신생 독립국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최소한 일세대의 평화-25년간의 평화라고 말한 적이 있다.
2차 대전이 끝 난지 25년, 그 동안 전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이 없었다고 해서「네루」의 희 원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참혹한 전화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창설되었던 UN이 이 한 세대 동안 평화질서가 마련될 최소한의 기틀이라도 잡았는가. 「네루」가 말했던 평화란 가장 소박한 의미에서의 평화, 즉 국가 단위의 전쟁이 없는 세계 질서를 뜻했다. 그러나 그 동안 세계 질서는 이러한 소박한 의미의 평화 논리가 용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2차 전후「아시아」「아프리카」의 구 식민지 및 구주 중소 국의 피해는 광대한「힘의 공백 지대」를 가져왔다. 50대는 이 지대를 양분한 미-소 두 거인의 냉전시대로 특징 지어진다. 양 대국의 냉전 논리는 실질적으로 자신의 국가이익에 충실하면서도「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지역적인 분쟁마저 형이상학적인 영역으로 확대시켰다. 50년의 한국동란은 이 냉전 논리와 단면을 두드러지게 보여주었다.
공산「블록」에 있어선 전쟁이란 자기목적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합리화 해 왔다.
미국은 1차 대전 때『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해』전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는 명분으로 그쳤을 뿐 자유세계의 안보 기수로서 지금까지 숱한 전쟁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다.

<모순 드러내는 유엔>
UN은 이러한 시기에 존재하고 있는 일종의 유일한 국제평화 유지체제였다. 그러나 평화 유지 방법이 집단 안전보장 수단에 의한 무력적 강제 조치란 점에서 전쟁의 형태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바로「전쟁에 의해 평화」를 추구한다는 자기모순을 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간의 현실적인 역관계, 특히 미-소 양 대국의 이해관계는 UN의 이러한 모순을 더욱 심화했다.
비근한 예로 68년의「체코」사태 및 월남전에 대한 UN의 무력은 그「덧없음」을 찾아 볼 수 있게 한다. 세계 여론의 집약 장소로서의 성격을 부각하기도 했지만 미-소 양 대국의 이해가 얽힐 경우「무능한 얼굴」만 드러냈을 뿐이었다. 60년대는 미-소 양 대국이 핵 균형의 역학에 따라 일방에 의한 전면 승리의 환상이 그릇된 것을 인식하고「현상」을 유지하며 공존으로 통하는「대화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 시대는 또한 중소 국가 군의 경제력 회복과 이에 따른 새로운「내셔널리즘」의 대두로 미-소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며 국제 질서가 다극화의 경향을 보인 시대였다.
70년은 전후 25년 동안 양대 세력 사이에 있었던「국지전」과「대화」및 세계질서의「다극화」가 지향하는 방향을 시준 해준 해였다.
70년에 들어서며 60년대의 평화 질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워 오던 두개의 전쟁, 냉전과 열전이 각각 하나씩 종식 단계에 접어들었다.
즉 독-소·독-파 조약의 체결은 당사국끼리 서로 무력포기를 선언함으로써 냉전의 마지막 쟁점이 되어 오던「구주의 현상유지」에 의한 평화질서를 재확인했다.

<강요받는 세계 3분>
또한 세계대전의「불씨」를 안고 있던「이스라엘」과「아랍」의 군사적 대결이 평화교섭을 통해 불안정하나마 휴전 상태에 접어들었다. 이는 당사국보다도「현상」을 유지하며 안정을 찾으려는 미-소의「합의」에 의해 이루어진「평화」였다.
그러나「아시아」, 특히 중공은 미-소의 균형에 의한 평화의 논리에 대해「민족해방」의 논리로써 도전하고 있다.
월남전은 축소 경향을 띄고 있으나, 4월의 미군「캄보디아」진공을 계기로 지역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파리」평화회담은 처음부터 무한 궤도를 달리고 있다.
중공의 도전은 미-소에 의해 이분화 한 세계 질서에 삼분을 강요하고 있다.「유엔」의 화해는 안정적 공존 시대로 접어들고 있으나「아시아」에서는 기본적 변화가 없이 중공-소 국경의 긴장이 지속되는 것을 비롯, 중공의「노자」가 메아리치고 있다.
중공은 독-소 조약에서 구주 안보회의 소집제창에 이르는 소련의「이니셔티브」를「아시아」에서 행동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의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제네바」군축회의서 SALT(전략핵무기 제한 회담)에 이르는 미-소의 핵무기 억제교섭은 중공을 겨냥한 두 나라의「야합」으로 받아 들였다.

<미국엔 신고립주의>
중공은 이 위기의식에 따라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무대에 등장하겠다는 현실적 바탕에서「캐나다」「이탈리아」등 친미 국가와의 수교에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유럽」에서는 서독의 보복주의라는 달갑지 않은「레테르」가 떨어지는 반면「아시아」 에서는 일본의 군 국화를 경계하는 눈초리가 중공을 비롯, 일제의 피해를 받은 지역에서 날카로워지고 있다.
72년의「오끼나와」반환을 계기로 일본은 경제대국에서 정치·군사 대국으로 전환하며 교묘하게 서방세계와 중공의 틈바구니를 비집고「동서 화해」내지「아시아 평정」의 주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미국은 이제 오랫동안 지구상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한다는 역할에 피로를 느낀 듯하다. 월남전에 대한 국내의 의견 분열, 경제사회 문제의 악화는 국방비 삭감, 해외 주둔군의 철수 등에 이르는 신고립주의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소련으로서도 최근의 경제불황에 시달려 너무 광역화한 전선을 정리, 축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SALT의 진전은「평화」를 앞세워 미-소 두 나라가 핵 군비 경쟁의 거대한 부담에 질러 개발비를 아낀다는 공동이익 추구의 귀결이다.

<핵의 공포는 여전히>
이처럼 핵의 균형에 따라 군사력의 기능이 저하하면서 국제 외교 무대에서는 증가일 로에 있는 군상들(서독·일본·신생 독립국가군·비동맹 국가 등)의 영향력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동시에 중소국가에 대한 강대국 지배력의 약화를 의미하므로 오히려 비 핵 시대적인 지역분쟁이 빈발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이에 핵 대국이 개입할 경우를 생각하면 새로운「냉전」상황을 유발할 우려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또한 핵 대국의 영향력 약화가 꼭 동서「블록」체제의 와해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므로 「핵의 공포」가 배제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견제하며 현상을 동정 화하여「평화」를 모색하겠다는「핵의 논리」는 역설적으로 자국에 유리한「평화」를 모색하겠다는 논리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김동수·한남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