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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전과 北 서해 도발 대비 위해 발탁”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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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 해사 25기. 해상 작전 전문가로 꼽힌다. 영관급 장교 때 초계함·구축함 함장·합동참모본부 해상작전 과장을 했고 준장 때 한미연합사령부 인사참모부장 및 해군 3전단장을 지냈다. 소장 때는 3함대 사령관과 합참 전략기획부장을 맡았으며 중장 진급 뒤엔 해군 작전사령관, 해사 교장을 지냈다. 2005년 예편.

창군 이래 처음으로 해군 출신이 합동참모본부(합참) 의장에 내정됐다. 최윤희 전 해군 참모총장의 합참의장 내정 사실을 다들 깜짝 인사로 평가한다. 또 1993년 5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양호 공군참모총장을 합참의장으로 임명한 뒤 20년 만에 처음 있는 ‘비(非)육군 임명’이기도 하다. 당시엔 ‘하나회 척결 뒤 부글거리는 육군을 피하려는 인사’라는 분석이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육군을 의식할 이유도 피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왜 해군인가. 28일 해군 작전사령관 출신인 김성만(64·사진) 예비역 중장에게 들어봤다.
 
 -왜 합참의장에 해군 출신을 내정했다고 보는가.
 “무엇보다 미래전쟁 대비라고 본다. 미래전쟁은 육군 중심이 아닌 해군·공군과 합동해 진행되는 통합 전투다. 이를 하려면 아무래도 비육군 출신이 낫다. 현 공군참모총장의 임기가 2년이 안 돼 인사 대상이 아닌 만큼 자연스럽게 해군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요컨대 대통령이 ‘육·해·공 3군 합동성 강화’라는 방향을 인식한 것으로 본다.(군 문제에 정통한 당국자는 “박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육군 중심의 군 작전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가졌으며 특히 미래에는 4세대 전쟁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고 이를 위해 군이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이번 인사에는 이런 뜻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는 북한 도발 대비다. 우리 군은 지금 북한이 국지도발을 일으킬 능력과 의도를 갖추고 있으며 시점이 임박했다고 본다. 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서해 5도와 북방한계선(NLL)이다. 북한이 도발하면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때처럼 경제에도 치명타를 가할 것이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위협, 중국의 이어도에 대한 위협도 합참 차원에서 대비해야 한다.”

 -북한 도발이 임박했다는 증거가 없지 않은가.
 “아니다. 가능성이 임박해 있음을 정부도 안다. 그래서 지난 3월 22일 한국·미국 합참의장이 공동 국지도발 대비계획에 서명한 것이다. 주요 도발로는 ▶NLL 침투 ▶서북도서 포격 ▶저고도 공중 침투 ▶특수부대 후방 침투 ▶군사분계선(MDL) 국지적 충돌 ▶잠수함을 이용한 함정 공격 등이 포함됐다. 1976년 8·18 도끼만행사건 이후 육지도발은 없고, 공중도발은 53년 이후 없었다. 그러나 해상과 서해 5도는 다르다. 북한은 99년 제1연평해전 이후 줄곧 해상도발을 해 왔다. 그런데 수상함 부분은 우리가 앞서지만 잠수함정과 기습상륙 분야는 크게 뒤진다. 천안함 사건이 해군의 현주소다. 이런 안보상황에서 합참의장이라도 바뀌면 전략·전술 차원에서 보완할 수 있다.”

 -최윤희 내정자는 그러나 합참에 근무한 경력이 없다.
 “최 의장 내정자는 내가 작전사령관을 하던 2003~2004년 진해에서 제5전단장(준장) 임무를 성공적으로 했다. 5전단은 성분전단으로 대형구축함, 상륙전 장비, 기뢰전 장비 등 핵심 전력으로 구성돼 있다. 해군 함정의 4분의 1 이상이 배치돼 있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공격 및 증원 전력이다. 또 2010년 해사교장 시절 천안함 피격사건 직후 해군 작전사령관의 직무대리로 사태를 수습했다.”

 -박 대통령이 원하는 합동성 강화를 합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본과 미국처럼 합참의장 윤번제를 해야 한다. 육군이 두 번, 해·공군 각각 한 번 하는 방식이다. 일본이 그렇게 한다. 일본의 병력 구조가 육군 61%, 해군 19%, 공군 20%로 우리와 비슷하다. 미군은 육군이 41%, 해군 37%, 공군이 22%여서 순번제로 한다. 국가안보실장,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에 군종을 달리하는 사람을 배치할 필요도 있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이 훨씬 더 잘 보좌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국방부 장관은 공군 출신이 나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제4세대 전쟁을 대비할 군으로 해군을 지목한 것은 의외다. 박 대통령이 해군을 들여다볼 계기가 있었나.
 “있었다. 73년10월부터 75년2월까지 2년4개월간 벌어진 북한의 ‘서해 5도 봉쇄사건’이 계기다. 우리 해군력의 5배나 됐던 북한은 경비정 10~20척을 서해 NLL 10~20㎞ 남으로 보내 휘저었다. 서해 5도가 다 봉쇄됐다. 국지전 같은 상황이었다. 황해남도 사곶과 초도 기지에서 쾌속 고속정 10~20척이 시속 50~70㎞ 속력으로 매일 내려왔다. 무시무시했다. 그런 고속정 6~10척이 우리 구축함을 가운데 놓고 돌면서 협박했다.
 그때 우리 구축함의 평균 속력이 20㎞ 정도였다. 고속정 뒤로는 최신예 스틱스 함대함미사일을 단 유도탄 함정, 어뢰를 단 어뢰정도 나타났다. 당시 구축함 전투정보관(대위)으로 대응작전에 참여한 나는 이런 상황을 현장에서 경험했다. 우리에겐 이를 막을 해군전력이 부족했다. ‘서해와 서해 5도를 사수하라. 덕적도 상공에서 공군기가 지원할 것이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죽기 살기로 버텼다. 그때 매일 북한의 최신 장비, 대치 상황, 필사적인 작전을 사진으로 찍어 청와대로 보냈다. 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던 지금의 박 대통령은 그런 서해 봉쇄 사태를 다 봤을 것이다. 75년 사태 직후 박정희 대통령은 대대적인 군함 건설을 지시했다. 그래서 수상함 분야는 군사적 우위를 확보했다. 이 함정으로 99년까지 북한의 해상도발을 억제했다. 그때 계획돼 만들어진 군함이 2010년 침몰한 천안함,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활약한 357 참수리 고속정이다.”

 -최 내정자는 당시 이를 경험하지 못했다.
 “북한의 해상 봉쇄가 계속되던 기간은 최 내정자가 해군사관학교 1학년 2학기~3학년 1학기까지였다. 당시 서해에 배치된 함정들은 하루에 스물한 번까지 전투 배치를 했다. 마찬가지로 해군사관생도들도 당시 비상이 걸렸다. 해군은 늘 북한 도발에 시달려 항재전장(恒在戰場), 즉 늘 전쟁 상태에 있다는 마인드가 강하다. 지금도 NLL은 주야를 막론하고 전투 상태다. NLL로 북한 경비정이 수시로 넘어온다. 휴전선과 다르다. 해군은 함정이 ‘살아 움직이면’ 퇴근해도 비상소집 때문에 집을 못 떠난다. 평생 그렇게 산다. 합참의장 내정자도 그런 군 경험을 했다.”

 -우리 군의 주력은 육군인데 해군 출신이 합참을 이끌 수 있겠나. 쓸 만한 장교가 없어 합참에 해군이 적다는 말도 있다.
 “합참 근무를 하지 않은 육군 출신 의장도 많다. 다른 군이라고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양호 합참의장도 공군 출신이지만 잘했다. 그리고 쓸 만한 해군 장교가 적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한국군의 현역 구성 비율은 육군 80%, 해군 10%, 공군 10%다. 육군 출신이 합참에 더 많은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다른 면을 볼 필요가 있다. 해군 전체에 4성 장군(제독)은 총장 1명인데 육군은 6명이다. 육사 한 기수 300명 가운데 보통 대장 6명이 나오지만 해군은 한 기수 150명 중 1명이다. 해군은 그런 경쟁 속에서 근무한다. 쓸 만한 사람은 많다.”

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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