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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저속 일변도의 대중예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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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중문화의 저속화는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러나 70년대의 첫해를 보낸 연예계의 특성은 한마디로 저속화 일변도로 요약 할 수 있다.
대중문화는 본질적으로 그 수요자가 대중이기 때문에 통속성을 면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대중 문화의 저속화가 대중과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영화에 있어서 저질·저속화는 이미 5월의 영화인 대회와 7월의 영화 작가「세미나」에서 지적, 논의되었고, 또 가요에 있어서 저속화는 지난 3월의 대중가요「세미나」에서 지적된 바 있다.
영화계에 있어서 70년은 50년 영화 사상 최악의 해라고들 말한다. 연초의「난센스·코메디」와 중반부터의「섹스」영화로만 일관했기 때문이다.
사양길에 접어든 불황의 영화계는 저질 영화를 만들게 했고, 다시 저질 영화는 관객을 쫓는 악순환만 거듭, 나중에는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섹스」영화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제작 자금의 영세성과 기획 부재에서 한 작품이「히트」하면 유사품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중국 검객 물이「히트」하면 국적 불명의 검객 영화가 쏟아져 나왔고『명동 출신…』 『남대문 출신…』『목포 출신…』『남포동 출신…』등「출신 시리즈」도 나왔다.
『돌아온 난아』『북경서 온 사나이』『동경을 울린 사나이』등「사나이 시리즈」가 나왔는가 하면,『팔도 여걸』『팔도 식모』『팔도 여군』등「팔도 시리즈」도 나왔다. 또 여성 상위 시대의「왈가닥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안일한 제작 태도는 관객을 극장으로부터 멀어지게 했고 결국 영화계는「에로티시즘」으로 잃은 관객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영화에 있어서「에로티시즘」은 항상 말썽 속에 계속 되어 온 것이고, 또「시네마·베리테」「언더그라운드·시네마」등 외국의 전위 영화 운동에서도 문제가 되어 온 것이긴 하다.
영화 미적「에로티시즘」이란 기치 아래 방화 계는 비교적 수준 작으로 꼽혔던 영화들마저「벗기기 작전」을 폈다. 즉『방의 불을 꺼 주오』의「카·섹스」,『해변의 전쟁』의「요트·섹스」가 등장했는가 하면『사랑하는「마리아」』에서는 남우를 벗겼고,『마님』에서는 환상 장면을 이용, 여체를 벗겼다. 또 동성 연애를 담은『비전』이 나왔고, 여자의 자위 행위를 다뤘다는『꿀맛』이 제작 중이다.
70년의 주류를 이룬 이러한 저질·저속 영화의 홍수에 대해 영화 평론가 이영일씨는 물론 1차 적인 책임은 영화계에 있지만 근본적 원인은 당국의 영화 정책 부재 탓이라고 말한다.
현실을 고발하는 문제성 있는 작품들은 아예 예륜의「시나리오」사전 심의 때부터 개작을 받아야만 하고 그 대신 저질·저속한「시」은 검열에서도 웬만큼 눈감아 주는 등 당국의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봉래 감독(영화인협회 이사장)은 사회가 저속해지니까 영화도 저속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저속하다고 비판하는 사람 자체는 얼마나 저속하지 않다고 자부하는가』고 오히려 반문한다.
또 그는 이사회가 고발 정신·비평 정신을 상실,「될 대로 되라」는 방관 주의로 흐른 것이 대중문화 저속화의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올해 들어 이러한 저질 영화의 범람으로 방화 수준이 오히려 4, 5년 전으로 후퇴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는데, 그 원인은 우선 영화계 내부 문제로 제작자들의 근시안적 사고방식과 또 당국의 영화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제작자들은 관객을 얕잡아 보고 불황의 타개책을 저질 영화에다 기대했지만 오히려 관객을 외화에 다 뺏겼고, 개봉관에서 방화는 1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또 당국이 시행 착오로 우수 영화에 대한 외화「코터」보상 제를 철폐하자 상업성을 추구하는 제작자들은 영화의 예술성을 아예 외면했고, 이로써 유현묵·이만희 감독 등 몇몇 유능하다고 알려진 감독들은 올해 한 작품도 말질 못하는 기현상을 빚었다.
이러한 추세로 보면 앞으로의 영화계도 암담하기만 하지만, 지난 15일 각 의를 통과한 새 영화 법 시행령에 따라 외화「코터」와 우수 영화 보상 등을 관장할 영화 진흥 조합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가요계의 저속화도 영화계와 마찬가지였다. 특히 올해는 저속한 대중가요 외에도 외국 음반의 해적판,「카세트」등을 통한「섹스·사운드」가 범람한 한해였다.
대중가요는 글자 그대로 대중성과 통속성이 강하고 영화보다 대중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학생 입장 불가」라는 팻말이라도 붙일 수 있지만 대중가요는 그런 것이 없어 그대로 청소년에까지 파고들고 있다. 초등 학교 아동 중 85%가 5, 6곡의 대중가요를 부를 줄 안다는 보고도 있다.
상업주의에 압도, 저속·일본 색·표절로 대표되는 대중가요를 심의하는 방륜은 이러한 곡들이 이미「히트」한 뒤 금지처분을 내리기가 일쑤여서「행차 후 나팔」「사후 약방문」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김부자 노래의『사랑은 이제 그만』도 이러한 예로 들 수 있다.
대중가요의 저속성은 폭력을 조장하거나 퇴폐적 또는 애욕을 촉진하는 가사에서 뿐 아니라「멜러디」「리듬」창법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와는 달리 해적판으로 나온「제인·버킨」의『사랑해...난 그만』(Je t'aime...Moinon plus)이란「섹스·사운드」를 담은 노래 아닌 노래가 말썽이 되었다. 이 곡은 방송에서 심야「프로」로 전파를 타기까지 했고 심의도 거치지 않은 복사판으로 시중에서 공공연히 거래되기도 했다.
또 자가용 족과 일부「택시」에 까지 장치된「카·스테레오」가 부쩍 늘어 일본에서 들여온 일본 노래와「섹스·사운드」를 담은「테이프」가 범람했다. 특히 지난가을에는 그나마 자율적으로 규제해 오던 한국 음반 협회가 이권 다툼으로 자학해 버리는 바람에 음반 계는 무정부 상태에서 헤매어 왔다.
이러한 현상은 모두 당국의 강력한 정책적 뒷받침이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연초부터 시작했던 불량·저속 음반의 단속도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끝났다.
여기에다 현재 국회 본 회의에 올라 있는 음반 법 중 개정 법안으로 인한 당국의 경과 조치로서의 복사판에 대한 묵인은 저질·저속·해적판의 범람을 가져와 혼란만 거듭 했다. <이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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